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Geeks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대거 팔아 논란이 된 후 금융당국은 스톡옵션 행사에 대한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최근 주가 하락으로 스톡옵션이 '휴지조각'이 된 사례도 늘고 있죠.
그러자 최근 주목받는 게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RSU)'입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인재 확보를 위해 이 RSU를 적극 활용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이를 도입한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요즘 뜨는 RSU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매일 인재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파격적 인센티브로 우수 인재를 잔류시키는 것은 정보기술(IT)기업들의 과제입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절정을 향하던 지난해 말에는 기업들이 특히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비대면 시대에 접어들며 촉발된 각종 IT 신사업 경쟁에서, 담당 인력을 뺏고 뺏기는 전쟁이 한층 더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약 3000조원) 애플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경쟁사의 위협이 거셌습니다. 메타(구 페이스북)로 사명을 바꾸고 하드웨어(HW)와 스마트 워치 시장에 눈독을 들이더니 지난해에만 애플 엔지니어를 100명가량 데려간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러자 애플이 새로운 인센티브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RSU·Restricted Stock Unit)’이 그것입니다. 고성과자들에게 최대 18만달러(약 2억26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소식에, 관련 내용을 보도한 블룸버그통신은 “이례적 조치”라 평가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선 RSU가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제도의 한계를 메워줄 보완재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애플을 포함해 구글, 아마존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국내서도 일부 대기업과 스타트업에서 점차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입니다. 최근엔 RSU 계약·관리 전문 서비스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업계에선 유연함을 장점으로 앞세운 RSU가 스톡옵션과 동등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시가 주식 무상 제공하는 'RSU' 뜬다
RSU란 무엇일까요?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이라는 명칭이 통용되고는 있지만,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는 말도 많습니다. 국내선 정식 제도가 아니고, 별도로 규제하고 있지도 않아 일부 의미만 강조됐다는 것입니다. 풀어 쓴 RSU의 정의는 ‘미래 시점, 특정 조건에 정해진 수량의 주식을 지급받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RSU를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선 먼저 스톡옵션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톡옵션의 사전적 정의는 ‘임직원이 일정 수량의 주식을 일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한’입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 기업의 성장을 통해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볼 수 있는 보상제도죠. 미리 약속한 행사가격(Exercise price)으로 주식을 취득한 뒤 시가에 팔수 있기 때문에 주가 상승만 전제된다면 매력적인 유인책입니다.
요즘같은 하락장에선 RSU가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RSU는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주식'을 제공합니다. 이때 주식은 통상 연 단위로 분할해 배분되거나, 수년 뒤 일괄 지급되기도 합니다. 시장 상황에 상관없이 주식의 전체 가치가 온전히 직원에게 가는 구조라서 선호도가 높습니다. 회사 입장에선 행사 가능 시점까지 재직자 근로의욕을 고취하고 근속 연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단기 성과에 매몰될 수 있는 성과급과 비교해도 낫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상장 게임사에 다시는 5년차 경력직 개발자 A씨의 사례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의 회사는 지난해 1인당 600주의 스톡옵션을 부여했습니다. 행사가격은 당시 시가인 7만원선. '특정 시점 이후 주식 600주를 7만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입니다. 이후 얼마동안 그 회사 주가는 상승세를 타서 10만원까지 올랐습니다. 그 주가 수준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A씨는 주당 3만원, 도합 1800만원의 차익을 봤겠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정작 스톡옵션 행사 가능 시점이 됐을 때 이 회사 주가는 6만원대로 내려앉았습니다. A씨 입장에서는 남는게 없는 셈이죠.
A씨가 대신 600주를 RSU로 수령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4년간 25%씩 주식을 분할 지급 받았다면, 그는 올해만 900만원 어치를 받게 됩니다. 행사가격 밑으로 주가가 떨어지면 휴지조각이 되는 스톡옵션과 달리 확정적인 이득입니다. (다만, 두 형태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업은 스톡옵션으로 부여할 시 예상되는 차익을 기준으로 RSU를 배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부터 예상 차익인 1800만원을 이상적 시가인 10만원으로 나눠 180주가 부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격이 6만원이 됐다면, 가정보다 더 낮은 총 1080만원의 이득을 보게 됩니다.)
RSU는 스톡옵션 보다 활용의 폭이 더 넓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우선 부여 대상자를 지정하는게 자유롭습니다. 스톡옵션은 집행임원이나 이사, 감사 등 임직원에게만 부여할 수 있습니다. 반면 RSU는 특별한 제약이 없습니다. 심지어 스톡옵션에선 금지되는 대주주 부여도 가능합니다. 부여 수량과 행사 가격에도 아직은 제한이 없습니다. 스톡옵션은 발행 주식 수의 10% 이내로 부여 수량이 제한됩니다. 시가 및 액면금액 중 높은 금액을 지급한다는 요건도 상법 제340조의 제2항에 정해져 있습니다. RSU는 무상 지급이라 행사 가격과 상관이 없습니다.
주주총회 특별결의는 스톡옵션의 주요 요건입니다. 법인의 활동을 규정하는 ‘정관’에 관련 내용을 미리 반영시키기도 해야 합니다. RSU는 별도의 정관 요건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실행이 가능해 기업 입장에서 절차상 부담을 크게 줄여줄 수 있습니다.
근속요건 제한이 없는 점도 파격적입니다. 스톡옵션의 행사 기간은 매우 세밀하게 정의됩니다. 일단 2년 이상 재직 시에만 행사가 가능합니다. 당사자 합의로도 줄일 수 없습니다. 이때 2년은 최소한의 요건으로, 법인과 근로자가 기간을 늘리기로 정했다면 따라야만 합니다. 지난해에도 관련 판결이 있었습니다. 의료용 안마의자 업체에서 3년 재직 조건이 붙은 스톡옵션을 받은 임원이 조기에 해고당한 사건입니다. 당시 법원은 임원이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RSU는 합의가 우선입니다. 천창현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RSU는 관련 규정이 없어 회사와 임직원 사이의 계약 관계로 규율될 문제”라며 “스톡옵션보다 유연한 합의를 통해 근속연수 제한을 둘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임원이 만약 RSU를 부여받았고, 기간을 2년 이하로 합의했다면 어땠을까요? RSU를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RSU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RSU는 받는 즉시 소득으로 인정돼 세금을 내야 합니다. 행사 시점을 미루면 소득세 납부가 연기되는 스톡옵션과는 다르죠.
신주 발행 방식을 쓸 수 없다는 점도 스톡옵션과의 차이점입니다. RSU는 회사의 자사주를 나눠주는 것입니다. 상법 제462조 제1항에서는 회사가 배당가능이익분에 한해 자기주식을 취득할 것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수익이 나지 않은 영세 스타트업의 경우, RSU를 쉽사리 부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전환사채(CB)를 발행해 RSU 명목으로 나눠주는 회피 방안이 있기는 합니다.
RSU는 취소 사유 등을 당사자 간 계약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의원면직, 부여 대상자의 고의 또는 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등 상법상 취소 사유가 정해진 스톡옵션과 차이가 있습니다. 처분의 제한에도 RSU는 별도의 요건을 계약에 추가할 수 있습니다.
조중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판교이노베이션센터장)는 “스타트업의 경우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벤특법)을 적용받아 스톡옵션 부여 대상이나 근속 요건 등의 규제가 일반기업에 비해 덜하고, 세제 혜택도 있다”며 “스타트업은 지분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을 때 스톡옵션 행사가가 정해지고, 시가보다 낮은 가액으로 부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어 행사가에 큰 부담이 없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스타트업은 조건과 상황을 따져 유리한 제도를 택해야 하는 셈입니다.
스톡옵션 혼란 틈타 성장…기업 선택지 늘리다
RSU의 역사는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1년 파산한 미국의 에너지·물류 업체 엔론은 현재까지도 회계 부정의 대명사로 거론되는 업체입니다. 천연가스 유통사들의 합병으로 탄생한 엔론은 출범 당시부터 50억달러(약 6조2000억원)에 이르는 채무를 지게 됐습니다. 엔론의 경영진은 각종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엔론의 재무 상태를 조작했습니다. 자산을 외부로 빼돌리는 데도 집중했습니다. AP통신에 따르면, 엔론은 파산 전 4년간 최대 21억달러(약 2조6000억원)는 매출액 조작, 29억달러(약 3조6000억원)는 자산 도피 형태로 자금 유출이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제프리 스킬링 엔론 사장은 스톡옵션으로 1900만달러(약 235억7000만원)를 챙기며 공분을 샀습니다.미국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회계 당국은 즉각 조치에 나섰습니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반발로 갈등이 지속되자, 주요 기업들 사이에선 논란의 대상인 스톡옵션을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RSU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미 컴플라이언스위크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포춘지 선정 1000개 기업 중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기업별 부여 스톡옵션은 40.1%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RSU 부여는 40.7% 증가했습니다.
어느덧 기업들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 잡은 RSU는 최근 들어 다시금 집중적인 검토 대상에 올랐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아마존은 4년 동안 점진적으로 RSU를 배분하는 보상책을 추가합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RSU를 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아마존은 지난해 7월과 11월 주가 하락이 이어지며 직원 유지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간 배분하던 RSU도 분배 원칙을 변경할 예정입니다. 현재 아마존 RSU는 첫해가 지나면 전체의 5%, 두 번째 해가 지나면 15%를 배분하는 등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수 성과자에겐 이 제한을 풀어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역시 RSU를 선택했습니다. CNBC에 따르면, SEC에 공개된 알파벳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법무책임자 등 4명의 고위 임원은 2300만달러(약 286억원)에서 3500만달러(약 435억원)에 이르는 RSU를 받았습니다. RSU는 회사에서 지속 근무하는 것을 가정하고 분기별로 12회 분할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알파벳은 전 세계 직원들을 대상으로 4년간 25%에 걸쳐 균등하게 배분하던 RSU 지급 방식을 사전 지급 형태로 바꾸는 방안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한화그룹이 2020년 2월 도입을 시작했습니다. 대상은 임원급 이상입니다. ㈜한화를 시작으로 한화솔루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투자증권 등 대부분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사회나 이사회 내 보수위원회에서 대상자를 선정하는데, 행사 가능 시점은 7년에서 10년으로 했습니다. 전무급은 2027년에, 사장급은 2030년에 실제 회사 주식을 가지는 구조입니다.
쿠팡은 지난해 2월 직원당 약 200만원 상당의 RSU를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배송 기사, 물류센터 상시직 등 단순 추산으로만 5만명이 대상입니다. 1년을 근무하면 50%, 2년을 근무하면 100%를 갖도록 했습니다. 총액은 1000억원 규모입니다. 토스증권도 같은 기간 보상책을 수정했습니다. 기존 스톡옵션 제도에서 RSU를 선택해 보통주 약 39만주를 직원 70명에게 부여했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는 토스 본사에서도 RSU를 활용하게 됐습니다. 이 밖에 크래프톤,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몰로코 등이 RSU 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선 스톡옵션과 RSU가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보단, 회사가 필요에 의해 적절히 활용하는 병행 구조를 취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까지 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유동성에 힘입어 몸집을 키워낸 스타트업들이 국내서도 RSU를 자리 잡게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실리콘밸리의 증권 관리 플랫폼 카르타에 따르면, 스타트업 보상 체계가 스톡옵션에서 RSU로 옮겨가는 데 평균 5년 반 시간이 소요됩니다. 전환 시기에서 평균 기업가치는 1억500만달러(약 1200억원)로 추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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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한 가지 더
국내 최초 RSU 관리 플랫폼 내놓은 '쿼타북'
국내서도 RSU 계약과 관리 서비스를 지원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했습니다. 쿼타북은 2019년 설립된 증권관리 서비스 전문 스타트업입니다. 최동현 쿼타북 대표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RSU는 근로자와 오랜 기간 함께하고 싶은 스타트업의 선택지를 늘려주는 제도”라며 “전자화된 관리 서비스를 통해 투자사와 스타트업, 근로자의 ‘연결 생태계’를 지원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쿼타북은 스타트업의 주주명부 및 스톡옵션 관리, 주식발행 이력 등을 종합 소프트웨어(SW)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구주 거래, 무상증자, 액면분할 등이 전산 프로그램으로 관리되고 각종 주식 계약 조건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고객사는 약 4000곳입니다. 토스, 당근마켓, 왓챠, 티몬 등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 대표는 미 카네기멜론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엔 벤처캐피털(VC) 카카오벤처스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심사역으로 근무할 때, 투자사에 주주명부를 요청했더니 2개월이 걸린 적이 있었다”며 “전산화 프로그램이 있으면 쓸 용의가 있냐고 업계에 물었더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이 쏟아졌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해외 프로그램을 들여올 생각이었습니다. 미국에선 이미 증권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카르타가 이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카르타 기업가치는 현재 7조원으로 추산됩니다. 그는 다만 “카르타의 조합 규약이나 회계 기준이 국내와 너무 달라서 사용이 불가능했다”며 직접 창업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창업 이듬해 글로벌 액셀러레이터(AC) 와이콤비네이터의 투자를 유치한 쿼타북은 아시아 시장의 카르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굿워터캐피탈, 딜라이트 벤처스, 국내에선 캡스톤파트너스 등이 투자했습니다.
RSU 서비스는 지난달 처음 시작했습니다. RSU에 대한 이해가 낮아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대시보드 기반으로 사용성을 늘린 것이 특징입니다. 최 대표는 “스톡옵션 관리 분야 중 가장 큰 고객사인 토스가 RSU 도입을 준비하면서 국내서도 본격적인 바람이 불겠다고 생각했다”며 “유연하고 확정적인 보상이 지급되는 RSU는 인재 대란이 벌어진 스타트업 업계서 빠르게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종이 화폐를 모바일로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던 때가 있다”며 “RSU를 포함한 다양한 증권 관리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비상장 기업들 디지털 전환을 이끌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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