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자의 필수 3요소는 실력(기술)과 운, 멘탈(정신력)이다.” 골프계에서 격언처럼 내려오는 얘기다. 선수들은 이 가운데 압박감과 싸워 이길 때 필요한 멘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잭 니클라우스는 “골프의 80%는 멘탈”이라고 했다.
성유진(22)에게 지금까지 우승 3대 요소 중 두 가지는 있었다. 우선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는 2020년에 홀인원을 두 번이나 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SK텔레콤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에서였다. 이로 인해 ‘홀인원 소녀’라는 별명도 얻었다. 프로 선수가 홀인원을 하는 확률은 일반적으로 3000분의 1로 알려져 있다.
실력도 충분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프로 데뷔 전까지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뛰었다. 2016년 한국중고연맹에서 우승 등 아마추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점프(3부)투어를 거쳐 2019년 정규투어에 안착했다.
그런데 압박감에 약했다. 그는 프로 데뷔 이후 72번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 없이 준우승(2020 맥콜·용평 리조트오픈, 2021 BC카드 한경 레이디스컵)만 두 번 했다. 지난해 9월 열린 KLPGA투어 엘크루 TV조선 프로 셀러브리티 대회는 특히 뼈아팠다. 당시 2라운드까지 2타 차 선두를 달리다가 최종 라운드에서 무너졌다. 7번홀까지 2타를 더 줄여 우승에 근접했다가 이후 6개 홀에서 보기 3개를 쏟아내면서 결국 우승을 유해란(21)에게 내줬다.
그랬던 성유진이 5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롯데오픈(총상금 8억원)에서 기어코 압박감을 이겨냈다. 실력과 운, 멘탈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데뷔 4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그는 이날 최종 4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서 최종 합계 15언더파 273타로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9년 정규 투어에 데뷔한 뒤 73번째 대회 만에 거둔 우승이다. 2위 김수지(26)를 4타 차로 넉넉하게 따돌렸다. 우승상금은 1억4400만원. 1라운드부터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는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이었다. 그는 “챔피언 조에서 미끄러진 경험이 워낙 많다 보니 3라운드가 끝난 뒤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2번홀(파5)에서 운이 따랐다. 과감하게 투 온을 노렸는데 두 번째 샷이 그린 우측 러프에 빠졌다. 성유진은 바로 이를 ‘칩인’으로 연결해 이글을 낚았다. 성유진은 “공이 깊게 박히지 않은 덕에 칩샷이 가능했다”며 “캐디와 상의해 2온을 노릴지, 끊어갈지 상의했는데 결국 공격적으로 친 게 들어맞았다”고 설명했다.
5번홀(파4)에선 압박감과 마주했다. 그린 사이드 벙커에 빠진 두 번째 샷을 꺼내려다 그린 반대편으로 공을 넘겼다. 퍼터와 웨지를 들고 한참 고민하다가 웨지로 친 샷이 잘못 맞아 홀을 한참 벗어났다. 결국 더블 보기. 하지만 성유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곧바로 6번홀(파5)과 8번홀(파4)에서 징검다리 버디를 잡아 실수를 만회했다. 후반 홀을 버디 1개와 보기 1개로 막으면서 우승을 확정했다.
지난해 메이저대회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우승자인 김수지(26)는 4라운드에서 5타를 줄여 11언더파 단독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성유진과 우승 경쟁을 벌이던 임희정(22)은 4라운드에서만 6타를 잃고 4언더파 공동 16위로 밀려났다. 디펜딩 챔피언 장하나(30)는 이븐파 공동 34위로 대회를 마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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