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62%·배추 43% 올랐는데…"농산물 대란, 이제 시작일 뿐"

입력 2022-06-05 17:48   수정 2022-06-13 15:15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4%를 기록하며 1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물가 폭풍’이 아직 끝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내 농산물의 가파른 가격 상승세가 생활 물가 전반을 자극하는 충격파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올봄 국내 농가가 농사를 대거 포기하면서 여름·가을 출하량에 비상에 걸렸다. 이미 일부 품목에선 가격 급등의 전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형 유통사들은 정해진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농사 비용 역대 최대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농가구입가격지수는 지난해보다 11.2% 늘어난 120.2를 기록했다. 집계를 시작한 2005년 이후 최고치다. 농가구입가격지수는 농가가 구입하는 비료비, 영농자재비, 종자·종묘 등 농사에 드는 비용을 종합해 산출하는 수치다. 103.2(2019년 1분기), 105.9(2020년 1분기), 108.1(지난해 1분기)을 기록하며 해마다 완만한 상승세를 타다 올해 급증한 것이다.


가장 비용 부담이 급증한 것은 비료값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당 요소비료 가격은 지난해 9250원에서 올해 2분기 2만8900원(212.4%)으로 상승했다. 비료업계 관계자는 “올초부터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면서 비료 원재료인 요소, 질소 등의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인건비도 문제다. 업계에 따르면 농촌 인건비는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2년 전 일당 10만원 수준에서 현재 13만~15만원으로 뛰어올랐다. 면세 경유 가격도 L당 1400원 수준으로 오르면서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보다 40~50% 급등했다.
전조 보이는 애그플레이션
지난달 31일 ‘2022년 제1차 농식품 수급상황 점검회의’에서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농산물 물가는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앞으로 재배면적 감소, 기상 여건 변화 등에 따라 변동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차관이 언급한 ‘변동 가능성’이 이미 시장에서 꿈틀대고 있다. 5월 배추 한 포기는 평년 대비 46.5% 높은 3949원에 거래되고 있다. 콩 500g은 23% 올라 5790원, 감자 100g은 32% 상승해 557원이다. 최근 가뭄까지 겹치면서 농산물 가격 추가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유통 대기업들도 물량 확보에 ‘긴장 모드’다. 유통사는 선계약으로 가격을 미리 책정해 농산물을 확보한다. 올여름 가격 인상에 직접적 피해는 없다. 하지만 경작 감소에 가뭄까지 겹치며 물량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 대형마트 채소담당 바이어는 “예상보다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매출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 내놨지만 ‘미봉책’
애그플레이션은 소비자물가 전반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식용유, 밀, 돼지고기 등 일부 품목이 들썩였던 국제 식자재 파동 때보다 더 큰 파도가 덮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채소류의 국내 자급률(2019년 기준)은 87.7%, 감자·고구마 등 서류작물은 105%, 쌀은 92.1%, 과실류는 75.5%다.

이런 상황을 인지한 정부는 지난달 30일 배추, 무, 마늘 등 특정 작물 3만4000t을 비축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애그플레이션은 특정 작물의 수급 문제가 아닌, 농가 전체의 비용 상승에 의한 수급 문제라 일부 품목 가격 방어는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공급에 문제가 더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임정빈 서울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비축 물량으로 가격 상승을 막아버리면 농가의 생산비 상승이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며 “이에 따라 농가는 지금 당장 농작물 재배면적을 더 줄이게 되고 향후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민기/최세영/한경제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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