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중의 메이저'도 접수한 엘리트 골퍼 이민지

입력 2022-06-06 17:36   수정 2022-07-06 00:01


호주 동포 이민지(26)는 자타가 공인하는 ‘골프 엘리트’다. 호주에서 클럽 챔피언을 지낸 ‘골프광’ 아버지와 티칭 프로였던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골프채를 잡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뛰어난 운동신경’(남동생 이민우도 DP월드투어에서 뛰는 프로골퍼)에 피나는 노력까지 더하는데, 성적이 나쁠 리가 없었다. 이민지는 아마추어 때부터 세계를 제패했고, 호주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제2의 카리 웹(LPGA투어 41승을 거둔 호주의 골프 영웅)’이 될 것”이란 얘기는 그때부터 나왔다.

8년 전 데뷔한 세계 최대 골프리그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무대도 그의 재능과 노력을 배신하지 않았다. 기복 없는 플레이로 꾸준히 승수(7승·메이저 1승 포함)를 쌓으며 세계 4위에 랭크됐다. 6일(한국시간)에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로 꼽히는 US여자오픈 우승컵까지 거머쥐며 ‘이민지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의 승수는 8승(메이저 2승 포함)으로 늘었다.
‘꿈의 무대’ 접수한 엘리트 골퍼
이민지는 이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던 파인스의 파인니들스 로지 앤드 GC(파71)에서 열린 US여자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이븐파 71타를 치며 최종합계 13언더파 271타로 대회를 마쳤다. 1996년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1999년 줄리 잉스터(미국), 2015년 전인지(28)가 작성한 US여자오픈 72홀 최소타 우승 기록(272타)을 깼다. 여기에 역대 최대 규모의 우승상금 180만달러(약 22억5000만원)를 따내면서 단숨에 상금랭킹 1위(262만5849달러)로 올라섰다.

이민지는 ‘약점이 없는 골퍼’로 통한다. 장타에 정교한 아이언 샷, 안정적인 퍼트를 모두 갖췄다. 이번 시즌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271.77야드(21위), 그린 적중률 74.21%(10위), 온 그린 시 평균 퍼트 수 1.72타(5위)다.

몰아치기는 이민지의 트레이드 마크다. 한 번 불이 붙으면 하루에 버디를 7~9개씩 뽑아낸다. ‘버디 기차(birdie train)’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이민지가 이번 시즌에 7언더파보다 낮은 스코어를 낸 것만 네 차례다. 지난달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 2라운드에선 버디 8개, 이글 1개, 보기 1개를 엮어 9언더파를 쳤다.

사상 최대 상금을 내걸고 판을 키운 US여자오픈은 최종 라운드에서 코스 난도를 한껏 끌어올리며 선수들을 괴롭혔다. 이날 언더파를 친 선수가 이정은(26), 최혜진(23) 등 두 명에 그친 걸 보면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민지는 ‘무결점 골퍼’답게 아무리 어려운 곳에 핀이 꽂혀도 정확한 아이언과 날카로운 퍼트로 파 세이브를 이어갔다.

우승이 확정된 뒤 이민지는 “어린 시절 카리 웹과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소렌스탐의 활약을 보며 그들과 같은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를 꿈꿨다”며 “그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위대한 선수들과 함께 이름이 거론될 수 있게 돼 영광”이라며 “많은 소년, 소녀에게 제가 좋은 롤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여자골프 4강체제 구축
이민지는 호주에서 나고 자란 동포 2세지만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쓴다. 한국말도 잘한다. 김효주(27)가 처음 LPGA투어에서 우승했을 때 공식 통역을 해줬을 정도다. ‘하나금융그룹’이 크게 적힌 모자에 한국 브랜드 ‘왁(WACC)’을 입고, 한국 선수들과 한국말로 스스럼없이 대화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를 한국인으로 오해하곤 한다.

이민지의 우승으로 LPGA투어에 ‘신흥 4강’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민지는 이번 우승으로 7일 발표되는 세계랭킹에서 고진영, 넬리 코르다에 이어 3위에 오를 전망이다. 뉴질랜드 동포인 리디아 고(25)는 이번 대회에서 5위로 선전했지만 이민지에 밀려 세계랭킹이 4위로 한 계단 내려앉을 가능성이 높다. 스티브 유뱅크스 LPGA 에디터는 “고진영과 코르다가 주도해온 LPGA 라이벌 구도에 최근 좋은 성적을 낸 이민지와 리디아 고를 더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LPGA 4강 시대가 시작됐다”고 했다.

올해 LPGA투어 루키인 최혜진은 최종합계 7언더파 277타를 쳐 3위에 올라 신인왕 레이스에 속도를 냈다. 최근 3개 대회 연속이자 시즌 여섯 번째 톱10이다. 4월 롯데 챔피언십 단독 3위에 이어 시즌 최고 성적과는 타이를 이뤘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27)은 합계 6언더파 278타를 적어내 4위에 올랐고 김세영(29)은 14위(이븐파 284타), 전인지(28)는 공동 15위(2오버파 286타)로 대회를 마쳤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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