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진주 기자] 그동안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보건대 이전의 타이틀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느낌이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과 같이 다소 직선적인 제목들을 통해 극의 방향과 메시지를 표면으로 드러냈다면, 이번 ‘브로커’는 약간은 생소하면서도 다차원적인 의미를 포함해 관객의 해설 참여를 유도하고 있었다.
극 중 소영(이지은), 상현(송강호), 동수(강동원)는 갓난아이 우성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나 매매업자에 대한 경계와 의심을 단 한시도 쉬지 않는다는 것. 더욱이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한 생명의 낙천적인 생애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바라는 모습을 통해 ‘중개’의 의미는 퇴색되고 인물들 간의 ‘연결’과 ‘교류’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겨낸다.
이는 제목 텍스트끼리 얇은 <i>선</i>으로 이어진 타이포그래피뿐 아니라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이 재봉틀로 박음질을 하고 헐렁해진 단추의 매듭을 단단히 하는 장면 속 <i>실</i>의 이미지를 통해 그 의미를 구체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생명윤리 관점에서 육아를 포기한 미혼모가 영아를 유기하는 ‘베이비 박스’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잇따르지만, 상처적 체질의 어른 집단이 무고한 아기에게 좋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할 양부모를 찾는 여정을 그려내며 줄곧 감독이 탐구해온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가족(운명 공동체)의 확대적 개념이라는 큰 주제 의식은 벗어나지 않았다.
앵글은 성매매와 살인죄로 낙인찍힌 소영, 도박 빚으로 가정에서 외면당한 상현, 친모에게 버려진 외톨이 동수와 고아 소년 해진(임승수)과 같이 소외된 인물을 비춘다. 그러나 이들을 쫓는 수진(배두나)과 이 형사(이주영) 역시 그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 이에 감독은 개인과 사회에 박힌 굳은살을 담담하게 노출시키며 인간관계의 존망을 확장시킨다.
그렇다면 짜게 식을 대로 식어버린 현대사회에서 피 한 방울 안 섞인 타자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승합차를 <i>물</i>로 한바탕 시원하게 적신 세차 장면은 지난밤 세차게 내리던 <i>비</i>와 대조된다. 처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얼굴은 인물들 간의 동화와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는 비에 젖을 일 없게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갈 수 있는 사이가 된 듯 제법 다정하다.
혹자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소영의 대사에 집중할 때, 필자는 상현이 우성을 바라보며 “우리랑 이제 행복해지자꾸나”라는 호흡에 주목했다. 불완전한 이들이 깊게 똬리를 튼 상실의 시대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상황을 묘사하여 현실 속 우리의 모순된 이면을 꼬집는다.
그런가 하면 느슨한 전개 속에서도 고레에다 감독이 풀어낸 한국식 유머가 빛을 발했다. 화려한 스타 출연진으로 구성된 탓에 몰입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반응이 적지 않지만, 송새벽, 이동휘, 박해준 등 특급 카메오들을 등장시켜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킨 그의 취사선택은 자못 감탄스럽다.
그러나 여운만큼 아쉬움도 더러 남는다. 모성애가 플롯을 구성하고 종교적 요소가 구원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을 부분 감지했으며, 상현을 연기한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과 같이 서민적이고 해학적인 역할로 등장해 영화 말미에는 의미심장한 선택, 결말을 맞는다는 점에서 어딘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투박하고 치밀한 시선과 한국을 향한 애정이 묻어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스토리텔링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지 아니할까.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에큐메니컬상, 남우주연상 수상작. 12세 관람가. 129분. (사진제공: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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