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산유국의 원유 증산 결정에도 국제 유가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세계 3위 산유국인 러시아 원유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중국에선 코로나19 봉쇄가 풀리고 있고, 미국은 에너지 소비 성수기인 여름을 맞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모두 추가 상승 전망에 힘을 싣고 있는 셈이다. 월가에서는 유가가 전쟁 초기 찍었던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39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아 등에 수출하는 원유의 7월 가격을 대폭 인상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앞서 지난 2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이 포함된 OPEC+가 7~8월 생산 규모를 하루 64만8000배럴로 기존보다 50% 늘리기로 했지만 시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21만 배럴 수준의 증산량이 러시아 원유 감산 등으로 인한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본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4월 하루 약 100만 배럴씩 감산했다. 하반기에는 하루 300만 배럴로 확대될 수 있다.
OPEC+가 증산량을 못 채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신재생에너지로 방향을 틀며 석유 투자를 줄인 산유국이 있어서다. 씨티그룹은 실제 증산량이 하루 13만2000배럴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재 OPEC의 6개월 내 최대 증산 가능량은 520만 배럴인데 이 중 핵 협상 지연으로 수출에 제약이 있는 이란이 130만 배럴을 차지해 원유 공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연초 배럴당 80달러를 밑돌았던 국제 유가는 러시아가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100달러를 돌파했다. 3월 7일 미국과 영국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 검토 소식에 브렌트유가 장중 139달러까지 뛰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가격이다.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은 대도시 봉쇄를 풀며 에너지 수요를 회복하고 있다.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하게 수입하고 있다. 원유시장 분석업체 보텍사는 중국이 지난달 러시아산 원유를 하루 110만 배럴씩 수입한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7% 증가한 수치다.
미국에서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휘발유 수요가 증가세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5월 마지막주 원유 재고가 507만 배럴 줄어 시장 추정치(135만 배럴)를 크게 웃돌았다고 밝혔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 휘발유 평균 가격은 연일 사상 최고가를 새로 쓰고 있다. 이날 가격은 갤런당 4.865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9% 상승했다.
국제 유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매트 스미스 케이플러 석유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수요 회복과 러시아의 감산이 이어지면 유가가 배럴당 139달러까지 오른 지난 3월 초와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은 최근 “전쟁 영향으로 유가가 배럴당 최고 175달러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골드만삭스는 3분기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140달러로 올려잡았다. WTI는 137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글로벌 원유 재고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최소 1년은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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