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 08일 08:2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i>#1. 국민연금은 이달 신규 선정 예정인 국내 사모펀드(PEF) 위탁운용사에 맡길 자금 규모를 5000억원으로 공고했다. 2021년 6000억원에서 17% 줄였다.
#2. 배터리업체 SK온은 올해 초부터 4조원 규모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작업에 들어갔으나 자금모집이 늦어지고 있다. 당장 필요한 돈은 지난달 단기 차입으로 충당했다.</i>
국내 PEF 운용사들이 신규 자금모집(fundraising)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들어 상장 주식·채권에서 큰 손실을 본 기관이 사모 주식 투자 확대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서다. 글로벌 시장에선 자금모집 차질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급증하던 국내 출자금액도 역성장 우려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펀딩 전년비 40% 급감
“기관이 PEF 내줄 돈이 없다고 합니다. 최근 펀드레이징(자금모집) 기간의 장기화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국내 한 PEF 운용사 대표는 “사모주식의 고평가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상장 주식 가격이 큰 조정을 겪은 탓”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PE 가치도 결국엔 상장 증권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주식·채권값 하락의 반대급부로 커진 대체투자 비중 등이 신규 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해석했다.
8일 대체투자시장 조사업체인 프레퀸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기관의 PE 투자 의욕을 반영하는 ‘펀드 모집 완료까지의 기간’은 지난 1분기 눈에 띄게 길어졌다. 투자 수요가 많은 경우에 속하는 ‘6개월 이내 자금모집을 완료’ 펀드가 올해 1분기 동안 전체의 9%에 그쳤다. 작년까지 5년 동안 평균 29%였던 것과 비교해 급격한 감소다.
모집자금의 규모도 줄어들었다. 글로벌 PEF 모집자금은 지난 1분기 동안 1160억달러로 집계됐다. 전분기 대비 10% 감소하고, 작년 동기 대비로는 38% 줄었다. 시장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 작년 3분기 이후 크게 꺾인 모양새다.
한세원 신한금융투자 실물자산 담당 연구원은 “작년 2분기까지 호조를 보이던 PEF 투자심리가 이후 냉각되는 모습”이라며 “인플레이션 및 주요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자본조달 비용 증가 우려로 이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폭탄 돌리기 같다” 우려도
상장 주식 가치의 하락으로 사모 주식의 고평가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최근 일부 PEF 운용사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지분 투자 협상 과정에서 발을 빼기도 했다. 기업공개(IPO) 시장 냉각으로 회사가 요구하는 몸값에 맞춰 투자할 만한 매력을 못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세컨더리(Secondary) 시장에 할인 매물이 나와도 적극적인 매수세를 찾기 어려워졌다. 한 유럽계 PEF의 국내 세일즈 담당 임원은 “할인율이 커도, 기다리면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사모 주식이 그만큼 고평가돼 있다고 판단하는 운용역이 많다는 얘기”라고 전했다. 세컨더리 거래는은 기관이 사모펀드 만기 전 회수를 목적으로 자신의 지분을 다른 기관에 파는 일을 말한다.
국내 한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일부 사모 주식은 상당히 고평가돼 있어 폭탄 돌리기 같다는 느낌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동안 투자 확대 과정에서 회수 금액보다 큰 금액을 재투자하는 과정을 반복했고, 그때마다 PE 가격은 계속 올랐다”고 말했다.
신규 자금모집 ‘역성장’ 가능성
기관의 신중한 태도가 올해 국내 PEF 자금모집 규모의 역성장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기관전용 PEF 신규 자금모집 금액은 작년 23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20년 17조9000억원에서 31% 증가했다, 2019년에 15조6000억원으로 소폭 감소한 뒤 2년 연속 빠르게 증가했다.PEF 자금모집 부진은 인수·합병(M&A)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작년 국내 M&A 상위 20건 중 기관 전용 PEF 참여 비중은 85%에 달했다. 국내 기관전용 PEF 출자약정금액은 작년 말 현재 116조1000억원, 투자이행액(실제 출자금액)은 87조4000억원이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0.1%와 24.5% 증가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