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른자위에 위치한 용산구 한남 3구역 재개발 사업 수주전은 검찰 수사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당시 건설사들은 1조원 규모 사업을 따내기 위해 법적으로 권한도 없는 ‘분양가 보장’과 ‘선(先)임대 후 분양’ 등 선심성 공약을 남발했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까지 나서 입찰에 참여한 3개 사(현대건설·대림산업·GS건설)를 ‘제안서에 이행이 불가능한 내용을 적는 등 입찰을 방해한 혐의(입찰방해)’와 ‘임대주택 제로’ 등 거짓·과장광고를 한 혐의(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하지만 검찰이 내린 결론은 무혐의였다. “분양가 보장 항목과 임대 후 분양 등 공약은 건설사가 이를 어길 시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할 일이지 과장 광고는 아니다”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정비사업에서 시공사의 말 바꾸기는 해묵은 갈등 소재다. 공사계약을 따내기 위해 수주전에서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가, 공사계약을 무르기 부담스러워졌을 때 슬그머니 말을 바꾸는 식이다. 하지만 문제가 돼도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개정안(천준호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은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 과정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허위·과장 광고한 건설사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적 근거가 모호한 도시정비법상 허위·과장광고를 처벌할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의견과 처벌 수준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등으로 완화돼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 엇걸란다.
건국 이래 최대 규모 정비사업으로 불리는 서초구 반포1단지 1·2·4주구 역시 비슷한 갈등이 불거졌었다. 현대건설은 2017년 수주 과정에서 제시했던 스카이브릿지 등 5000억 원 규모 대안설계를 본계약에서 제외했다.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 금품도 살포했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시공사 선정취소를 요구하는 일부 조합원의 주장을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경쟁사 역시 대안설계를 제안했고 총회에서 대안설계는 참고사항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최근 초유의 공사중단 사태로 정비업계 최대 이슈가 된 강동구 둔촌주공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전 조합집행부가 현대건설 등과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이 결정적인 문제였지만 수년간 쌓여온 시공사와의 갈등과 불신이 누적됐다 폭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합원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대응 여력이 크지 않은 조합에서는 문제 제기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공사-조합집행부의 결탁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게 정비업계의 설명이다.
천준호 의원 발의안은 이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강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했다. △피해를 본 자에 대한 손해배상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를 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 △시?도지사가 시공사 선정 취소 명령을 내리거나 공사비의 20%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근거를 담았다.
법안 통과에 앞서 열린 국회 법안소위에서는 관련 조항들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과징금 조항 등이 이중 처벌이라는 지적과 함께 허위 과장 광고에 대한 처벌이 민법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별도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도정법은 도시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법이고 부당한 표시?광고 행위는 이미 민법에 나와 있다”며 “수조원대 공사에 20% 과징금을 매기면 과잉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천 의원은 “도정법에 이미 처벌이 규정돼 있는 뇌물수수 등에 준하는 중대한 위반사항이라고 봤다”며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로부터 타당하다는 답변을 받아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조항을 준용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실제 국토부와 국토위 전문위원은 전반적으로 기존 발의안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도 “금융소비자 보호법도 금융위원회가 100분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별도법을 통해 규정한다”며 허위?과장 광고 금지를 명시하고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조응천 김교흥 의원 등은 “과징금은 과도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종안은 결국 벌금 등 조항을 삭제하는 것으로 절충됐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민법이나 공정거래법 등을 준용했던 허위 과장 광고에 대한 금지 규정이 신설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수천억 원을 굴리는 시공사들이 1000만원 벌금에 몸을 사릴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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