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다간 사이드미러 시안만 그리다 퇴사할 판" [노정동의 선넘는 차(車) 이야기]

입력 2022-06-08 14:19   수정 2022-06-08 15:02


"이대로 가다간 국내 디자이너들은 사이드미러 시안만 그리다가 퇴사할 수도 있겠네요. 글쎄요, 뭘 시켜야 할까요. 해외에선 이미 반도체와 자동차 회사 간 경계가 없는데 말이죠."

최근 만난 국내 한 완성차 제조업체 직원의 얘기입니다. 자동차 산업이 전동화, 스마트모빌리티로 가는 과정에서 기존 인력 활용방안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은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이들을 마땅히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겁니다. 디자이너면 디자이너, 엔지니어면 엔지니어, 이런 식으로 구분지어 채용한 탓에 엔지니어링을 이해하는 디자이너, 디자인을 이해하는 엔지니어 같은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가 태부족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이런 답답함의 토로는 하루이틀 얘기가 아닙니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례적으로 "교육부뿐만이 아니라 전 부처가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교육부의 개혁과 혁신,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며 교육부가 경제 부처처럼 생각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로 가는 과정에서 교육부가 첨단산업 인재 육성에 실패했다는 인식이 담긴 듯 했습니다. '반도체 전문가'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특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런 얘기를 꺼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해마다 반도체 분야에선 약 1600명, 미래차 분야에선 약 2000명의 인력이 '구멍'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인력은 해외에서 끌어오거나, 기업이 해외로 나가거나, 아니면 해당분야 기술을 다른 나라로부터 돈을 주고 사오거나, 아예 완제품을 구입하거나 하는 식으로 메워야 합니다. 요즘과 같이 '기술=안보'로 보는 시각이 확산하게 되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기술이 경제 문제에 국한될 때에는 돈을 주고 사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안보 문제로 넘어가면 '공백'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국경을 걸어 잠그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최근 팬데믹 과정에서 배웠습니다.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가고 있지만 그 위에 차가 없는(공피치)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차 이야기니 자동차 분야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산업 기술인력은 오는 2028년까지 8만9069명(그린카 7만1935명, 스마트카 1만1603명, 인프라 5531명)이 필요합니다. 산업부가 계산해보니 2018년 기준 5만533명에서 매년 5~6%씩은 대학 등에서 관련 인재 육성이 돼야 충당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 자동차공학 석·박사 졸업생 수는 173명에 불과합니다. 2020년에도 209명에 그쳤습니다. 특히 요새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동차 소프트웨어 전공자까지 포함하면 부족 인력은 매년 2000명 이상입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의 '미래차 산업 전환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미래차 산업기술 인력은 향후 5년간 지금보다 3만8537명이 더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친환경차 관련 인력은 2018년 기준 4만2443명, 자율주행차는 5021명, 인프라 관련 인력은 3068명으로 총 5만532명입니다. 소프트웨어 인력은 1000명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경우 전기차 포함 친환경차의 인력을 2020년까지 27만4000명으로 늘렸습니다. 일본 토요타는 올해부터 신규 채용의 40% 이상을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으로 채워 1만8000명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은 연평균 40%가 넘는 고성장을 이어가 2020년 64억달러(약 8조1312억원) 수준에서 2035년 1조1204억달러 규모까지 확대될 전망입니다. 2030년에는 약 1억6000만대의 자율주행차가 전세계에서 판매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국내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 역시 2020년 1509억원에서 2035년 26조1794억원으로 매년 40% 이상의 고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부품의 국산화율은 어떨까요? 내연기관 부품산업은 국산화율이 95%에 달하지만 전기차 부품 국산화율은 68%, 수소차는 71%,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38% 등으로 낮았고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78.8%에 그쳤습니다.

또 내연기관 부품기업은 2030년까지 약 500개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지만 전기·전장 업체와 수소차 부품 업체는 각각 350개와 400개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이 때문에 전기·전자 엔지니어와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의 확보가 미래 모빌리티 산업 시장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페라리 같은 '내연기관 올인'을 외치던 회사도 지난해 반도체 전문가를 회사 최고경영자(CEO)에 앉혔습니다. 자동차 한 대에 반도체 칩이 3000개가 들어가는 시대가 됐는데 여전히 '섀시 전문가'를 사장에 앉힐 수 없다는 얘깁니다.


올 초 열린 CES 2022에서 만난 현대차의 한 고위임원은 "국내 최고의 산업 인재들은 대부분 해외 기업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고 해외 인재들은 퀄컴, 엔비디아, 인텔로 가거나 아니면 직접 회사를 차린다"며 미래차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이제 관련 기술이 필요하면 지난해 현대차가 로봇기업 보스톤다이내믹스를 인수했던 것처럼 아예 사버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수 있습니다. 현대차가 지난달 고려대와 함께 국내 최초로 채용을 전제로 한 학·석사 통합 과정의 계약학과를 설립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읽힙니다. 이지형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전략본부 연구원은 "정부가 나서 미래차 제어 및 소프트웨어 관련 석·박사급 신규 인력 양성과 신성장산업 인재 9만명 육성 등의 정책을 추진해 단기간 내에 대규모의 미래차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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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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