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대선 패배였다. 개표 결과가 나온 심야에 나는 수첩에 이런 메모를 남겼다. “윤석열의 승리가 아니라 이재명의 패배다. 더 정확하게는 민주당 당원들의 패배다.” 오랜 세월 공들여 키운 후보를 외면하고 약점투성이 후보를 내세운 선거공학의 오만함이 선거를 그르쳤다고 봤다. 물론 영남 후보라는 것이 이재명을 선택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대중적 인기가 훨씬 높았고 정치적 순발력도 탁월했다. 특히 대장동 사태를 야당 스캔들로 되치기하는 장면은 민주당 극성 지지층에 명장면으로 남았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곽상도 50억 스캔들’이 터지던,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재명의 부덕은 이런 정치적 돌파력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이낙연은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뒤 억울한 심경을 애써 누르면서 “민주당은 민주당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대선 승리가 중요해도 어떻게 이재명 같은 사람을 후보로 뽑느냐는 항변과 다름없었다.
그 이재명이 이제 국회의원 신분으로 민주당의 차기 당권을 노리고 있다.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이렇다 할 만한 경쟁자가 없기도 하지만, ‘졌잘싸’ 논리가 시즌2를 보장하는 바람에 여전히 다음 대선의 유력 후보다. 국회의원들은 후보의 구심력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오는 8월 선출되는 당대표 자리에는 2년 뒤의 총선 공천권이 딸려갈 가능성이 높다. 전당대회가 끝나면 민주당 집단지도체제는 단극체제로 바로 전환될 것이다.
이낙연은 지난 7일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기 전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책임자가 책임지지 않고 남을 탓하며 국민 일반의 상식을 행동으로 거부했다. 광주 투표율 37.7%는 현재의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다.” 누가 봐도 이재명을 겨냥한 비판이었다. 경선 패배 직후 “민주당은 민주당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울분을 터뜨린 상황의 재현이었다.
이재명은 두 번의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다. 특히 지방선거를 망쳤다는 힐난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나온다. 친문들과의 일전이 불가피하다. 당내 사정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파상적으로 전개할 부정부패 수사다. 검찰을 무력화하기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검수완박의 후폭풍은 역설적으로 검찰 출신의 요직 독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검수완박까지 남은 18개월 동안 총력전을 펼치겠다는 심산이다.
이재명이 믿을 언덕은 두 개다. 야당 대표라는 직함과 ‘개딸’ ‘잼딸’로 대변되는 극성 지지층이다. 개딸들은 전당대회 투표권 획득을 위해 권리당원 자격 변경까지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일 이들이 보낸 축하 화환 속에서 첫 등원을 마친 이재명은 “축하 인사 보내주신 지지자 여러분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개딸들의 출현을 ‘세계사적 현상’으로까지 평가하고 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팬덤 정치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안중에도 없다. 논란 많은 정치인으로서 조건 없는 맹목적 지지만큼 반가운 것도 없을 터다. 하지만 이런 팬덤이 민주당이나 당원들 모두에 이로울 것이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민주당은 진보의 정치적 요람이다. 누구든 자유롭게 머물고 왕래하며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의 극성 팬덤이 그 요람을 독차지하려다가 치유 불능의 독선과 내로남불에 빠진 게 엊그제다. 악성 팬덤은 지도자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한다. 도덕과 가치를 주관화하기에 자기반성과 쇄신도 할 수 없다. 비판적, 대안적 지지도 허용하지 않는다. 장차 정권을 되찾아야 할 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민주당은 정녕 그 길로 들어설 것인가. 당원들의 전략적 선택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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