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삼성전자가 윈도 모바일에서 안드로이드로 갈아타고 스마트폰을 제대로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침 회사에서 그 스마트폰 ‘갤럭시S’를 지급했다. 재빠르게 신청서를 쓰고 물건을 손에 넣었다. 과연 옴니아2와는 달랐다. 아이폰만큼은 아니지만 부드럽게 구동되는 화면에, 노트북을 펼치지 않고도 간단한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게 됐다. 피처폰 시절 ‘되긴 되는구나’ 정도에 그쳤던 음악 재생, 사진 촬영 등 기능도 ‘일상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할 만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갤럭시S가 등장한 뒤 세상은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새 스마트폰을 받고 몇 달이 채 안 됐을 무렵, (당시 사회부에 있던 내게) 부장은 “카카오톡이란 앱을 써봤는데 대단하다”며 “당장 운영업체 대표를 인터뷰하라”고 했다. 판교로 달려갔다. 가는 차 안에서 카카오톡을 깔아보고 다음날 ‘직원 22명을 둔 벤처기업 카카오의 메신저가 200만 가입자를 눈앞에 뒀다’는 기사를 썼다. 새로운 문물에 관심이 많던 당시 사회부장은 카카오가 오늘날 주식 시가총액 수십조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것을 예감했던 걸까.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바일 메신저로 사진을 보내고 기프티콘도 주고받는 세상이 됐다. 컴맹에 가까웠던 중장년층과 노년층도 직관적이고 쓰기 쉬운 스마트폰 사용에 대부분 익숙해졌다.
세계 110여 개국에 출시된 갤럭시S는 총 2500만 대나 팔려나가며 삼성이 수년간 판매한 스마트폰 숫자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콧대 높은 애플 때문에 속을 끓인 미국 버라이즌과 AT&T, 유럽의 보다폰과 오렌지 등 전 세계 통신사들의 전폭적 지지도 있었지만, 제품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실적이었다. 이듬해 나온 후속작 갤럭시S2도 인기를 끌며 합계 5300만 대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지구촌에 뿌려졌다. 안드로이드 생태계는 빠르게 활성화됐다. 오늘날 애플 앱스토어와 어깨를 나란히 한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성장은 갤럭시S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갤럭시S가 없었다면 모바일 혁명의 속도가 몇 년은 더 늦어졌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폐쇄적인 애플의 정책과 비싼 가격 때문에 아이폰의 보급이 더뎠다. 갤럭시S 시리즈가 성공한 뒤 이를 모방한 중국 후발 업체들이 싼값의 기기를 찍어내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젊은이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PC와 유선 인터넷망 인프라가 없는 낙후된 곳에서도 디지털 혁신이 가능해졌다.
삼성전자와 국내 협력 기업들은 물론 한국 스마트폰 관련 산업 전체가 갤럭시S의 덕을 봤다. 당시 휴대폰업계 1위 노키아를 비롯해 소니에릭슨, 모토로라, HTC 등이 경쟁적으로 스마트폰 개발에 달려들었지만 지금 살아남은 곳은 많지 않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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