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력이 25년마다 성쇠를 반복한다는 ‘25년 단위설’도 있다. 15년 주기설과 25년 단위설의 공통점은 2020년이 일본 쇠퇴기의 마지막 해라는 점이다. 2021년부터 일본이 본격적으로 일어서리라고 믿은 일본인이 많았던 이유다.
2019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558조4912억엔(약 5221조6135억원)으로 버블(거품) 경제 시대 규모를 뛰어넘자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는 일본이 하염없는 추락을 멈출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부활의 싹은 2021년이 오기 전에 잘리고 말았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이었다. 코로나19의 충격이 가장 컸던 2020년 2분기 일본의 GDP(연율 환산)는 512조4616억엔으로 반년 만에 46조엔 증발했다.
2021년이 일본의 해가 아니라는 점이 명백해지자 새롭게 떠오른 국력의 순환주기가 ‘40년 주기설’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논설주간을 지낸 작가 미즈키 요가 주장한 가설이다. 러·일전쟁의 승리(1905년),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1945년), 플라자합의 이전까지의 고도성장기(1985년) 등 일본의 국력이 40년마다 부침을 거듭한다는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2025년 일본은 1985년 이후 40년간 이어진 내리막길을 끝내고 세 번째 상승기를 맞는다.
믿었던 2021년에도 침체가 이어지자 일본에서는 코로나19로 노출된 약점을 개선하는 구조개혁 없이 국력의 상승기가 오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술력 강화는 경제대국 일본이 부활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꼽힌다.
일본은 소재 부품 장비 등 기초 제조기술 분야에서 독일과 함께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세계적 흐름인 탈석탄·디지털 시대에 일본의 제조기술이 계속 통할지에 대해 일본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보기술(IT)산업 등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보다 우위에 설 가능성이 높은 시대에 일본이 유연하게 변신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미국은 차세대 기술의 플랫폼, 유럽연합(EU)은 표준규정 제정 등 큰 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반면 일본은 한국 중국과의 하드웨어 경쟁에만 시선을 뺏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3년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선정한 ‘세계 50대 혁신기업’에는 도요타자동차(5위) 등 일본 기업 6곳이 포함됐다. 하지만 2020년 일본의 혁신기업은 소니(9위) 등 3개로 줄었다.
2025년이면 쇠퇴기가 끝날 것이라는 기대와 반대로 일본이 ‘잃어버린 50년’의 초기 침체를 앞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근대화를 시작한 메이지유신(1868년)에서 1889년 헌법 공포로 완전한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까지 20여 년이 걸린 역사에 기초한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코로나19를 계기로 일본이 새 시대로 전환하는 데도 20년이 걸릴 전망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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