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앞장선 유럽도 컴백…韓, 원전 뺀 'K택소노미' 다시 짜야"

입력 2022-06-09 17:46   수정 2022-07-09 00:02


8일(현지시간) 독일과 인접한 덴마크 남부 소도시인 쇠네르보르. 평소 한적한 이 도시에 지난 7일부터 호텔에 빈방이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계 20여 개국의 에너지·기후 부처 장관들과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 민간기업과 에너지 시민단체 인사들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2022 IEA 에너지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들은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대란이 최악의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자력발전을 비롯해 다양한 에너지원을 적절히 혼합한 ‘에너지 믹스’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해결할 대안이라는 점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유럽도 원전 적극 활용”

한국경제신문은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현장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 총회를 취재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이 국내 언론과 단독 인터뷰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총회의 핵심 주제는 에너지 대란 속에서 어떻게 탄소중립을 더 효율적으로,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비롤 사무총장은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원자력 등 친환경적인 중간 단계의 에너지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 안보 걱정으로 유럽 국가들도 다시 원전을 찾고 있다”고 최근 상황을 전했다.

한국에선 EU 회원국들이 탈원전을 강력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현지 에너지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 일부 회원국은 탈원전을 강력 추진하고 있지만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동유럽 회원국은 코로나19와 에너지 대란을 계기로 원전을 오히려 확대하는 추세다. EU에서 원전은 전체 발전량의 2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당초 유럽에서 가장 먼저 탈원전을 추진했던 영국은 2050년까지 신규 원전 10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냉전 시절 옛 소련이 건설한 원전을 지금도 주력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동유럽 국가들도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비롤 사무총장은 지난 3월 IEA가 발간한 보고서를 소개하며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안은 친환경 에너지원인 원전 발전량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정부, 원전 운영·투자 지속해야”
비롤 사무총장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폐기 방침에 대해서 적극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탄소중립과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한국 정부가 ‘에너지 믹스’ 정책 과정에서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기존 원전 10기의 수명을 연장할 계획이다.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도 공사를 서둘러 재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한·미 경제안보 동맹 차원에서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도 주력하기로 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역점 추진한 탈원전 정책에 대한 평가엔 말을 아꼈다. 다만 그는 “유럽 사례에서처럼 한국도 절대로 원전을 폐쇄해서는 안 된다”며 “원전 운영과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의 ‘K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서 원전이 배제된 데 대해 “윤석열 정부가 다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2월 탈원전 정책을 명분으로 K택소노미 최종안에서 원전을 뺐다. EU가 지난 2월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한 것과 정반대 결정이었다. 원전을 강조하는 영국, 프랑스와 동유럽 회원국의 요청을 EU 집행위원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면 친환경 녹색 에너지원으로 인정받을 근거가 생긴다. 정부 및 금융회사로부터 적극적인 자금 지원도 받을 수 있다. 탈원전을 공식 폐기한 윤석열 정부는 K택소노미에 원전을 다시 추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쇠네르보르(덴마크)=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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