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또 한 번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3월 1981년 12월(8.9%) 후 최고치를 찍은 CPI는 4월 소폭 하락한 뒤 지난달 8.6%를 기록하며 또다시 천장을 뚫었다. 3개월 연속 8%대 고공행진이 이어져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 압력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의식주 전반에 걸쳐 가격이 급등했다. 특히 2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치솟은 에너지 가격이 다시 폭등했다. 5월 에너지 부문 CPI는 전년 동기 대비 34.6% 올랐다. 3월(32%)과 4월(30.3%)의 상승폭을 넘어섰다. 전월 대비로는 3.9% 올랐다. 휘발유 가격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48.7% 뛰었다. 중유는 무려 106.7% 급등했다.
CPI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비용도 물가 상승을 이끌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5% 올랐다. 1991년 2월 이후 최대치를 경신했다. 전달과 비교하면 0.6% 뛰었다. CNBC는 주거비용이 2004년 3월 이후 가장 빠른 상승세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식품 CPI도 전년 동월에 비해 10.1%에 올랐다. 전월 대비로는 1.2% 상승했다.
국제 유가와 곡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한 데다 4월까지 석 달 연속 떨어진 중고차 가격도 5월엔 상승세로 돌아섰다. CPI 세부 항목인 중고차 가격 상승률은 16.1%였다. 전달에 비해선 1.8% 뛰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 및 식품 부분을 제외한 근원 CPI는 6% 올랐다. 3월(6.5%)과 4월(6.2%)에 비해 소폭 하락했지만 시장 예상치(5.9%)를 웃돌았다.
미국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1월부터 급격히 상승해 올 3월 8.5%로 40여 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한 달 뒤엔 다시 8.3%로 떨어졌고 5월에 다시 8.6% 오르며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플레이션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는 이유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고문은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뛰고 있고 주거비와 식료품도 물가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했다.
물가상승률이 계속 8%대를 유지해 미국 중앙은행(Fed)이 강한 긴축 정책을 펼 가능성이 커졌다. Fed가 6월과 7월뿐 아니라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Fed가 9월에 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확률은 62.7%를 넘어섰다.
전체 50개 주 중 20개 주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5달러를 돌파했다. 워싱턴DC의 평균 가격은 5.171달러로 5달러를 훌쩍 넘었다. 휘발유 가격이 가장 비싼 캘리포니아주는 갤런당 6.4달러를 넘겼고, 캘리포니아주 내 일부 카운티는 8달러에 근접했다. 미국 휘발유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인 3월 14년 만에 처음으로 갤런당 4달러 선을 넘었으며 당분간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날 한 포럼에서 “휘발유 가격이 가까운 시일 내엔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현안인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JP모간은 미국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6.2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휘발유 가격이 오르면 운송비와 물류비 등이 동반 상승해 제조 원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오현우 기자/워싱턴=정인설 특파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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