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위원장 '퇴사'로 끝난 현대차그룹 'MZ 노조'…금속노조와 갈등

입력 2022-06-12 16:54   수정 2022-06-12 17:57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 ‘MZ 사무직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한 이건우 노조위원장(현대케피코 연구원)이 회사를 떠났다. 사측과의 교섭권 확보가 어려운 제도적 한계, 기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세력과의 내부 갈등, 개인화 성향이 강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구성원의 특성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는 평가다. 이 위원장의 퇴사로 지난해 경영계를 뜨겁게 달군 젊은 사무직 노조 설립 열풍이 일단 실패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지난 10일자로 현대케피코를 퇴사했다. 1994년생인 그는 지난해 4월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기치로 현대차그룹의 ‘인재 존중 사무·연구직 노동조합’ 결성에 앞장서며 위원장을 맡았다. 기존 강성노조와의 차별화, 생산직 위주 교섭 탈피, 사무직에 대한 차등 보상 등을 내세우면서 커뮤니티 가입 직원이 5000명을 넘어서는 등 세를 불렸다. 출범 직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했다.

사회적 주목을 받았던 이 위원장은 노조 출범 직후부터 큰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MZ노조 출범 과정에서 조직 내로 들어온 기존 금속노조 출신 세력과의 갈등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독자 노선과 차별화를 내세웠던 이 위원장은 금속노조 출신으로 민주노총 가입을 강하게 주장한 40대 부위원장과 내내 부딪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합비 처리를 둘러싸고 둘은 송사까지 벌였다. 업계 관계자는 “소송 과정에서 이 위원장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기존 노조 세력에 환멸을 느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내부 갈등뿐 아니라 이 위원장이 제도적·현실적 벽에 부딪혔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교섭권 부재와 MZ세대의 개인적 성향 등이 단결과 투쟁을 핵심 동력으로하는 노조활동과 맞지 않았다는 얘기다.

제도적으로 사측과의 교섭 권한은 기존 노조가 독점하고 있다. MZ노조는 노조활동의 핵심인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유일한 방법인 ‘교섭단위 분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근로조건과 고용 형태가 크게 다르다며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한 LG전자 사무직 노조의 요청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기각되자 추진력을 잃었다. 단체교섭은 원칙적으로 계열사별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룹 전체 MZ사무직이 모인 조직이 동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았다.

퇴사와 이직이 일상화된 MZ세대의 특성 또한 사측과 갈등이 불가피한 노조 조직과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세대의 구성원들이 굳이 회사와 싸우면서 노조 활동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초반에 활발하던 현대차그룹 MZ노조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최근 수개월째 이렇다 할 게시물조차 올라오지 않고 있다.

한 노무사는 “이 위원장 본인도 ‘퇴사’라는 개인적인 방식으로 노조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느냐”며 “파업이나 점거 등 기존 노조의 투쟁 수단을 선택하기 어려운 MZ노조의 입장 또한 역설적으로 동력을 약화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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