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특허침해소송, 변리사도 참여할 수 있어야

입력 2022-06-12 17:11   수정 2022-06-13 00:04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모든 특허침해소송을 변호사만 대리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심지어 기저귀 특허 사건의 대법원 확정판결은 무려 11년8개월이 걸렸다. 이는 특허무효소송과 특허침해소송이 이원화돼 진행된 소송 구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허 기술 내용을 잘 모르는 변호사와 판사가 소송을 진행한 것이 그 주된 이유다.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누가 하면 좋을지를 검토하기 전에 먼저 국내외 환경을 살펴보자. 천연자원이 부족한 좁은 국토에 인구가 많고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는 국가 생존 전략으로서 지식재산기본법을 제정해 2011년 7월 20일부터 시행했다. 필자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제1차 지식재산정책 5개년계획을 수립했고, 그 후 제3차 5개년계획까지 수립했다. 지식재산에 관한 국제무역수지가 엄청나게 개선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이 세계 64개국의 지식재산정책에 대해 발표한 세계국가경쟁력연감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23위, 정부의 효율성은 34위에 불과하다. ‘세계 특허출원 건수 4위’인 한국이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는 실정에 비춰 볼 때 초라한 성적이다.

2006년과 2009년에 이어 또다시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지금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인 변리사법 개정안은 변호사가 특허침해소송의 대리인으로 선임된 사건에서, 소송 당사자가 원하면 변리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추가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실제 특허침해소송을 경험한 대다수의 사건 당사자가 원하는 내용이다.

세계적인 특허소송으로 진행된 삼성과 애플 소송에서도 어떤 쟁점은 변호사가, 또 다른 쟁점은 변리사가 주도하는 등 상호 동등하게 협의했기 때문에 소송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1997년부터 변리사 시험 2차 주관식 과목으로 민사소송법이 채택됐다. 그 후 해마다 변리사들은 민사소송 실무 연수 교육을 받아 왔으며, 특히 1998년 특허법원 설립 이후로는 특허무효 및 권리범위확인 심결에 대한 취소소송을 수행해 왔다. 변리사가 대법원에 심결취소소송을 대리해온 지는 60년이 넘었다.

특허침해소송의 본질은 침해 기술이 과연 특허권의 권리 범위 내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있다. 이런 업무는 최초 특허출원 당시에 이를 취급한 변리사가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변리사들이 종래에 법원에서 해 오던 업무다. 그렇다면 사건 당사자가 원하면 영국, 유럽연합, 일본, 중국과 같이 변호사 소송대리 원칙의 예외로서 변리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추가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특허침해소송 당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큰 관심은 승소 여부이고, 그다음이 소송 비용과 소송 기간이다.

현재 특허침해소송 사건은 변호사와 변리사가 함께 일하고 있는 대형 로펌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소송 비용이 비싸다. 소형 로펌에서 변리사를 추가 대리인으로 선임해 함께 일한다면 소송 비용이 저렴해질 수 있다.

변호사가 특허침해소송의 대리인으로 선임된 사건에서, 당사자가 원하면 변리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추가하는 이슈를 결코 단순히 변호사와 변리사만의 직역 갈등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첨단기술에 관한 글로벌 특허 전쟁이 기술 안보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특허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변호사와 변리사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과학기술계와 산업계는 20여 년간 변리사의 소송대리인 추가를 염원해 왔다. 이 법안을 종전처럼 국회 법사위에서 심의도 하지 않은 채 회기 만료로 또다시 폐기해서는 안 된다. 국익을 우선하고 과학기술 및 지식재산 생태계 발전을 위해 사회지도층인 변호사들의 미래지향적인 결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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