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지돈 "헷갈리는 책이 늘 재밌죠" [작가의 책갈피]

입력 2022-06-13 17:27   수정 2023-05-04 16:35



소설가 정지돈은 '독서욕'을 일으키는 작가다. 그의 소설에는 수많은 소설가, 시인과 철학자의 세계가 뒤섞인다. 이 이름들은 독자에게는 또 다른 독서 경험으로 향하는 이정표다.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스크롤!>(민음사)에는 친절하게 참고문헌까지 따로 정리해뒀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속 짜임새 있는 몸짓을 보면 괜히 몸이 들썩여지듯이, 그의 글은 읽는 맛을 돋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소설가 정지돈은 요즘 무슨 책을 읽을까? 최근 신간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정 작가에게 직접 물었다.

정 작가가 기회가 될 때마다 추천하는 책이 하나 있다. <아이 러브 딕>(크리스 크라우스 지음, 박아람 옮김, 출판사 책읽는수요일).

이 책의 저자는 물론이고 저자의 (전) 남편과 이름이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오래된 부부 크리스와 실베르의 앞에 딕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두 사람에게 오랜만에 욕망을 부추기는 역할을 맡는다. 이 부부는 딕을 수신인으로 삼아 부치지 못할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작가가 말하는 이 책의 매력은 '헷갈림'에 있다. "저는 단숨에 쭉 읽히는 책은 재미 없더라고요. 소설인지 아닌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픽션인지 헷갈리는 책이 언제나 재밌지 않나요? 쉽게 말해, 질문하게 하는 책을 좋아해요."

이 책은 역주행한 명작이다. 1997년 출간 당시에는 "글이 아니라 토사물"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서 페미니즘 문학의 고전으로 재평가 받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아이 러브 딕>을 두고 "지난 100년 동안 쓰여진, 남자들과 여자들에 관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며 "사랑에서 분노나 공허를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이 그 이유를 설명해줄 것"이라고 평했다.

국내에는 2019년 출간됐는데 판권 계약이 종료돼 절판됐다. 읽으려면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중고 책을 구해야 한다.

인터뷰날 기준 정 작가가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민음사에서 격월로 발간하는 문예지 <릿터> 최근호였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요즘 언제 웃어?'. 박혜진 편집자는 '에디터의 글(editor's note)를 통해 "나를 웃게 하는 것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준다"며 "웃음에 대한 정의는 종종 나에 대한 정의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웃음의 개념부터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웃음, 하이퍼리얼리즘 개그가 인기를 얻는 현상 등을 두루 살핀다.

정 작가는 릿터의 연재 글 중 소설가 이상우·박솔뫼와 연구자 안은별의 산문 '0시 0시+ 7시'를 특히 즐겨 읽었다고 했다.

이 산문은 세 사람이 서울, 도쿄, 베를린에서 같은 기간 '따로 또 같이' 쓴 글이다. 이 산문의 원칙은 세 사람이 글을 완성하는 대로 서로 공유하는 것. 지난해 연재를 시작해 이번 호에 마지막 회를 실었다.

정 작가는 "짧은 글이라 자칫 단상에 불과할 거 같지만 본인의 이전 글, 다른 사람들의 글과 호흡하는 '짧으면서도 긴 글들'이라 좋았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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