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하라다 유타카 나고야상과대 비즈니스스쿨 교수(사진)가 최근 “지금 일본은 청나라 말기를 닮았다”고 주장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하라다 교수는 경제기획청, 재무성 등을 거친 경제관료 출신이다. 2015~2020년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에 해당)을 지내며 아베노믹스를 주도했다.그가 1999년 집필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일본 경제를 묘사할 때 가장 흔히 쓰는 표현이 됐다. 하라다 교수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일본이 선진국의 최저 수준에 턱걸이할 것”이라면서도 “한국은 급격한 인구 감소 때문에 일본 경제를 추월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현재 일본의 상황을 “청나라 말기와 닮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나라는 1840년 아편전쟁 패배로 서구에 뒤처진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개혁이 필수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1911년 신해혁명으로 멸망했다. 오늘날 일본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쇠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청나라 말기를 닮았나.
“유전자증폭(PCR) 검사 부족 등 코로나19를 계기로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일본은 간단히 바꿀 수 있는 것조차 바꾸려 들지 않았다. 행정의 디지털화만 해도 2000년대부터 추진한 정책이다. 수조엔의 예산을 쓰고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나.
“현재 상황을 바꾸면 손해를 보는 다양한 저항세력의 방해 때문이다. 말로는 개혁이 필요하다지만 실제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현재 상황이 이어지면 일본이 선진7개국(G7)에서 탈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선진국의 최저 수준 정도로 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의 인구는 여전히 유럽 국가들의 두 배 이상이어서 당장은 버틸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이미 일본보다 높다. 이런 추세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차이는 매년 1%포인트 정도다. 20년 후면 한·일 간 1인당 GDP 격차가 지금보다 20%가량 줄어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 인구는 한국의 2.4배이고, 한국이 인구가 더 빨리 줄고 있다. 양국의 경제 규모가 역전되기는 어렵다.”
▷일본 경제가 침체한 가장 큰 원인은 뭔가.
“너무 많아서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고용제도의 경직화가 가장 큰 문제다. 한번 고용한 근로자를 정리해고하기가 너무 어렵다.”
▷1999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집필했다. 오늘날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맞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반복된 금융정책 실패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달러당 엔화 가치는 120엔에서 80엔으로 치솟았다. 세계 중앙은행이 금융완화를 시행할 때 일본은행은 움직이지 않은 탓이다. 일본 전자산업은 괴멸적인 타격을 받았고, 한국 전자회사들이 일본의 점유율을 빼앗았다.”
▷장기간의 금융완화가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약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아베노믹스를 시행한 2013~2019년 7년간 일본 경제는 매년 1% 성장했다. 이전 7년간의 성장률은 0.2%였다. 실업률도 4%에서 2%로 낮아졌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는 임금 인상을 유도해 소비를 진작하는 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의 소득주도성장과 닮았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도 20~30% 정도 최저임금을 올린 결과 실업이 늘지 않았나.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도 오르는 한국이어서 그나마 괜찮았던 거다. 물가와 소득이 오르지 않는 일본이 최저임금을 20% 올리면 큰일이 날 것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하라다 유타카 교수는>
△1974년부터 경제기획청, 외무성, 재무성 등에서 경제관료로 활동 △2004~2011년 다이와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2012년 와세다대 정치경제학술원 특임교수 △2015~2020년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 △대표 저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디플레는 왜 무서운가》 《일본 경제는 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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