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현실과 동떨어진 해운업 규제

입력 2022-06-13 17:21   수정 2022-06-14 00:05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한·일 항로에서 2003년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76차례에 걸쳐 운임 담합행위를 했다며 15개 선사(국적선사 14개)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800억원을 잠정 부과했다. 지난 1월엔 2003년부터 2018년 12월까지 15년간 한국·동남아 항로에 취항한 23개 국내외 컨테이너 선사에 운임 담합을 이유로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핵심 사항은 해운법이라는 특별법으로 보장한 해운에서의 공동행위와 관련해 절차상 미흡과 위반으로 발생한 사안을 이유로 해운법 적용을 무효화하고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수 있느냐의 법리적 쟁점이다. 부당한 기업들의 가격 담합을 바로잡아 선량한 대다수 소비자를 보호함으로써 시장의 공정거래를 확립한다는 공정거래법의 근본정신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첫째는 동남아 항로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혹독한 해운 불황기에 중소 해운기업으로 구성된 국적선사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저운임을 설정해 그 유지에 공동으로 노력했다. 그것도 해운법에 의거해 해운당국에 신고하고 화주와 협의했다. 이를 매번 성실히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운법 적용을 배제하고 공정거래법을 일방 적용하는 그 힘은 어디서 온 것인가. 특히 2004년 공정위는 선사 간 공동행위에 대해 해운법에 의한 정당한 행위이고 협약 절차상 문제는 해운법 소관업무라고 적법성을 인정한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재를 가한 것은 공정위의 자기부정이 아닌가?

둘째는 해운의 공동행위는 해운 특성상 공급이 단기간에 늘어날 수 없고 선박이 건조되면 통상 20년 이상 시장에 남아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수요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불황기에도 해운이 살아남을 수 있는 운임 수준을 보장해주기 위해 인정했다. 이를 위해 세계적으로 동맹이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유럽연합(EU) 국가들의 동맹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EU 국가 선대가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어 후발국가의 정기선 선대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EU에 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해운의 공동행위가 소비자인 화주에게 큰 피해를 줬느냐는 관점이다. 공정위는 선사들의 공동행위로 인한 화주의 피해 규모와 해운선사들의 부당이익을 입증하지 않았다. 또한 실제 소비자인 국내 경제단체들의 탄원서와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1000여 화주의 사실확인서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제재를 취했다. 사실 한·일, 한·중, 동남아 항로에서의 과거 영업실적을 살펴보면 부당이익은커녕 살아남기에 급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컨테이너 선사들의 호황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적 현상이며 이는 과거 10년 이상의 혹독한 불황 끝에 온 요행에 불과하다. 이를 보고 과거 해운선사들이 화주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향유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일 항로는 대상 화물의 50% 이상이 외국 대형 컨테이너 선사들의 요청에 따라 부산항을 단순히 스쳐 가는 환적화물(피더화물)이다. 이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해운의 실상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동북아 지역에서 극심한 경쟁 아래 제1의 환적항으로 동북아 중심 항만이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부산항과 세계 6대 항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부산시민에게도 큰 피해가 될 것이다.

신정부는 상식에 의한 법치를 국정 정신으로 하고 있고 과감한 규제 철폐를 통한 기업 활동의 활성화를 독려하고 있다. 현재의 해운업에 대한 이런 조치는 국가적 차원의 규제이며 기업의 에너지와 자원을 생산적이지 못한 데 낭비하는 일이다. 기업의 행위가 큰 테두리 안에서 적법하다면 이런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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