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개 모래주머니 푸는 건 시작일뿐…"관료 보신행정부터 넘어라"

입력 2022-06-14 17:32   수정 2022-06-22 15:14


수도권에 있는 한 농업용 드론 업체는 지난해 전북 공장에 있던 드론 생산라인 두 개를 폐쇄했다. 제품 출시 전 매번 인천까지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해 인력과 비용 부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품을 내놓기 전은 물론 제품 구매 후 2년마다 안전 검사를 받아야 할 정도로 드론에 관한 규제가 촘촘하지만, 국내에서 드론 검사 장소는 전국에 딱 한 곳(인천)밖에 없다. 매년 검사를 받아야 하는 드론 수가 3000여 대에 달하지만 검사 기관이 부족하다 보니 접수부터 검사까지 대기 기간만 평균 2개월이 걸린다. 제품을 구매한 전북 김제에서 벼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하루 전에 인천에 도착해야 안전하게 검사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다”며 “대당 22만원에 달하는 검사비에 운반비, 교통비, 식대 부담으로 한 번 검사받을 때마다 50만원을 훌쩍 넘게 돈을 쓴다”고 토로했다.
농업용 드론 검사 장소는 전국 한 곳뿐
정부가 지난 13일 신산업 분야 규제 33개를 개선하기로 했지만, 현장에선 규제 완화 조치가 과연 효과를 낼지 의구심이 여전하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모두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구호 따로, 현장 따로’의 모습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부가 밝힌 규제개혁 조치에도 드론의 야간 비행 시 필요한 안전 장비 요건을 포괄적으로 바꾸는 등 ‘개선 사항’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드론 제조업체와 이용자의 발목을 잡는 수많은 ‘모래주머니’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최대 이륙중량 25㎏을 초과하는 드론은 항공안전법령과 항공안전기술원 내규에 따라 빡빡한 안전검사 의무와 비행허가 조건이 따라붙는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드론 중 70% 이상은 농약·비료·볍씨 살포 등에 쓰이는 농업용 드론으로 이들은 대부분 최대 이륙중량이 25㎏을 초과한다.

드론업계와 소비자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규제는 제품을 출시할 때(1차)마다 ‘모델 샘플 검사’(형식인증검사)를 받아야 하고 판매할 때(2차) 또 전수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판매 후에도 드론 소비자는 2년에 한 번 전수 검사(3차)를 다시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판매된 1만여 대에 달하는 농업용 드론들은 ‘삼중 부담’을 져야 한다.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드론업계 관계자는 “세계에서 농업용 드론에 전수 조사 규제를 갖춘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비 규제도 층층으로 자리잡고 있다. 프로펠러나 모터 교환 등 간단한 정비에도 전문 자격자의 사인이 필요하다. 사전 비행 승인 및 허용 구역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대부분의 드론은 비행하기 1주일쯤 전 사전 신고해야 한다. 수도권 비행 시험장은 한 달가량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어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 쉽지 않은 구조다.

이에 중소기업 규제 개선 전담 정부 기관인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지난 3년간 90여 건의 드론 비행 승인 관련 애로사항을 접수해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국토부는 안전을 이유로 규제 완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등에서도 건의가 잇따르자 판매할 때 전수 검사(2차)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1㎏ 2억원 폐지방도 ‘쓰레기통’으로
지방 흡입수술 과정에서 빼낸 폐지방을 화상 치료용 창상회복연고, 관절 수술 후 회복용 조직 수복제 등으로 활용하는 기술도 몇 년째 규제에 막혀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성인 한 명이 복부지방 흡입술을 받으면 통상 3~10㎏의 폐지방이 추출된다. 폐지방에서는 콜라겐 등을 뽑아낼 수 있다. 바이오 벤처업계에서는 활용하기에 따라 폐지방이 ㎏당 2억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에서는 폐지방을 활용한 성형수술용 필러 제조 판매 및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치료제,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 등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폐지방이 연간 500t 이상 소각되고 있다.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등이 인체 폐지방을 폐기물관리법 의료폐기물로 분류해서다. 인체 폐지방을 의약·미용품으로 개발하는 사업을 준비 중인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인체 폐지방 활용길을 열어주겠다는 정부 약속만 믿고 수십억원을 투자했지만, 규제는 여전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처럼 하루가 급한 첨단산업 분야에서 몇 년째 규제가 존속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공무원들이 각자의 반대 논리를 들고나올 경우 규제 혁파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여기에 택시기사, 의사, 부동산중개사 등 직역별 이익단체의 극렬한 저항도 주된 걸림돌이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규제 개혁의 효과는 불특정·비조직화된 다수에 미치는 반면 규제를 유지해 이득을 얻는 사람은 조직화한 이익집단인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안대규/김진원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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