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증권은 정보기술(IT) 불모지였던 증권업계에 전산화 바람을 일으켰다. 1976년 전산터미널을 도입하고 1979년 객장에 전광시세판을 설치했다. 모두 업계 최초 시도였다. 당시만 해도 분필로 흑판에 시세를 적는 시절이었다. 이후 국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시작인 ‘사이보스’ 시리즈를 히트시켰다. 누적 사이버 거래액 1000조원을 최초로 돌파하는 등 온라인 증권거래 시장을 이끌었다.
2000년대에 들어 대신증권에 위기가 찾아왔다. 우수한 투자은행(IB) 부문 인력들이 빠져나갔고, 저가 수수료로 무장한 증권사가 등장하면서 주식중개 부문의 경쟁력이 약해졌다.
증권업의 트렌드도 바뀌었다. 중개업의 시대가 저물고 투자의 시대가 열렸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기자본 규모에 따라 증권사의 사업 영역이 결정됐다. 자본의 크기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면서 금융지주·대기업 계열의 증권사들은 앞다퉈 자기자본 확충에 나섰다. 증권을 모태로 성장한 독립계 증권사였던 대신증권으로서는 규모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출발은 저축은행 인수였다. 2011년 8월 중앙부산·부산2·도민저축은행을 자산·부채인수(P&A) 방식으로 인수했다. 2014년에는 우리에프앤아이를 인수해 대신에프앤아이를 출범했다. 주력 사업인 부실채권(NPL)은 물론 부동산 등 대체투자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2019년에는 대신자산신탁을 설립해 부동산 신탁업을 시작했다. 자산관리회사(AMC) 인가를 받고 리츠(RETIs) 시장을 본격 공략하며 경쟁력을 높였다.
이 같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대신증권은 금융과 부동산을 아우르는 밸류체인(가치사슬)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증권·자산운용 등 금융 부문과 에프앤아이·자산신탁 등 부동산 부문의 전문성을 결합해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어 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부동산을 활용하지 않고는 고객들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10년 간 대신증권은 ‘주식만 하는 회사’에서 ‘주식도 하는 회사’로 변화했다. 이 기간 대신증권이 보유한 100% 자회사는 3배 증가했다. 사업 다각화와 계열사 실적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영업이익은 8855억원(연결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오랜 기간 구축해 온 탄탄한 위험 관리 시스템 위에 금융그룹으로서 성장 가도를 걷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80년대 정부 자본시장 활성화 방침으로 여의도로 이전한 대신증권은 32년 만인 2016년 말 명동으로 돌아왔다. 총 7개의 계열사가 한지붕 아래 모였다. 1985년 여의도로 이전할 당시 대신증권은 자기자본 299억원, 임직원 590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였다. 현재는 총자산 자기자본 2조6029억원, 그룹 임직원 2000여명의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올해 60주년을 맞아 대신금융그룹은 명동 사옥명을 기존 ‘대신파이낸스센터’에서 ‘Daishin 343’으로 바꾼다. 사옥 주소인 ‘중구 삼일대로 343’에서 착안했다. 새로운 사옥명과 함께 대신금융그룹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업계에서 유일무이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대신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찾아 나가겠다”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시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투자회사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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