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구조조정이든 한쪽만 일방적으로 정리하는 형태는 반발과 부작용이 많다. 우리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인 대학 구조조정을 일부 지방대와 사립대에만 전가하는 것 또한 대학집단 전체의 무책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학의 현실은 아래도 문제지만 위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를 든다면, 우리의 대기업들이 1990년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지 않고 내수에만 매몰됐었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없다. 상위권 대학들이 엄청난 개혁을 통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글로벌 경쟁에 나서고 숨통을 트여줘야 정체된 대학 사회 전체가 선순환할 수 있고 전체적인 구조조정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의 글로벌 경쟁을 책임져야 할 주체는 단연 서울대와 KAIST다. 이들 대학의 세계 경쟁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다양한 지표가 있지만,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양적 지표가 아니라 질적 지표를 보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예를 들어 라이든 랭킹이라는 사이트에서 가장 최근의 학술자료로 서울대의 이공계 분야 연구력을 상위 1% 논문으로 국한하면 서울대는 전 세계 130위다.
가까운 예로 일본 도쿄대 물리학과는 정년 보장을 주는 정교수 채용 및 심사 기준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먼저 해당 연구자가 세계 최고인가? 그렇지 않으면 일본 최고인가? 도쿄대 물리학과는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거나 적어도 일본 최고여야 정교수가 된다. 도쿄대에서는 이러고도 세계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와는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서울대나 KAIST에서는 이런 비판적인 의견에 대해 으레 나오는 상투적인 답변이 있다. ‘세계적인 대학만큼 재정 지원을 해 달라’는 말들을 너무도 쉽게 한다. 나는 재정 지원이 진짜 문제가 아니라 두 대학의 구조적인 난맥상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 몇 년 연구 장비를 뺏기면서 치열하게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나만의 연구 분야를 개척해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언제까지 구차한 변명만 할 셈인가!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을 거의 공짜로 몰아서 주고, 국가 연구비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면서 할 소리는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년 보장 심사를 강화해서 아시아 톱3가 아니면 30% 정도를 탈락시키는 치열한 경쟁을 도입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서울대와 KAIST는 아시아의 경쟁 대학인 도쿄대, 교토대, 베이징대, 칭화대, 홍콩대, 싱가포르국립대보다 잘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들 대학에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를 맡기고, 본인들은 성에 차지 않을지라도 국가적으로 과분한 지원을 하면 당연히 이 정도는 요구해야 한다.
나는 서울대와 KAIST의 연구자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붙여야 우리나라 전체 이공계가 살 수 있다고 본다. 이들 두 대학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서 교육과 연구의 양과 질에서 모두 글로벌 대학으로 도약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 구조조정의 중요한 첫 단추가 되기 때문이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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