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실패를 통해 빠르게 학습할 수 있는 수평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이제 글로벌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기존의 한국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위계적·관료적인 조직문화와 그 기반에서 성장한 리더들의 성공 체험이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를 인지한 기업들은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고 조직 내 호칭을 통일하고 경영진이 참여한 다양한 소통 이벤트를 마치 경쟁하듯 내·외부 매체를 통해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조직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단순히 소통하는 행위 자체의 증가나 형식적인 제도 변화를 수평적인 문화 확산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평적인 조직문화의 핵심은 구성원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자기의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 혹은 ‘조직의 부정적인 관행이나 리더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이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원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조직 내에 만연해 있는 근거 없는 두려움(unfounded fear) 때문이다. 한국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다. 괜히 이야기를 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y safety)’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상호 신뢰와 존중이 가능한 조직문화의 핵심 동인으로 동료들에게 본인이 갖고 있는 원래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줘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실수를 하거나 질문할 때, 소수 의견을 냈을 때도 구성원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조직이 성장할 수 있다. 심리적 안전감이 없는 조직에서는 현상 유지에 머물거나, 리더의 과거 경험에 의한 편향된 의사결정을 하거나, 다양한 의견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두려움들은 구성원이 지니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기 어렵게 하고 조직 내에 생산적인 소통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구성원이 침묵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말해도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hearing’과 ‘listening’은 둘 다 ‘듣다’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다. 둘의 차이점은 ‘listening’은 단순하게 이야기를 귀로 듣는 것을 넘어 가슴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정서적인 공감이 전제돼야지 상대방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실행까지 강하게 연결될 수 있다. 고(故) 신영복 교수의 ‘함께 맞는 비’라는 글에서 ‘돕는다는 것은 비가 올 때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공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글귀다.
조직 내 소통 채널을 통해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 구성원이 조직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기는 힘들다. 리스닝이라는 것이 리더나 특정 개인의 역량 및 스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조직 리스닝 역량을 체계적으로 측정하는 진단 도구들이 개발되고 있고 진단 결과에 기반해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실행 체계 및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런 조직 리스닝 역량의 핵심은 결국 구성원이 제시한 의미 있는 의견들이 실행될 수 있는 운영체계가 잘 구축돼 있고 작동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조직의 리스닝 역량이 낮으면 결국 직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직원들의 침묵은 회사 내 침묵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개인이 느끼는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에 대해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들이 있다. 과거에 삼삼오오 모여 뒷담화하던 시절은 이제 추억이 돼버렸고 이제는 비공식적인 익명 채널들을 통해 회사에서 느꼈던 부정적인 정서 경험을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다.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된 내용들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돼 기업 명성에 큰 타격을 가져올 수 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 구축이라는 것이 기업의 전략 보고서 마지막 장을 예쁘게 장식하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최고경영자의 최우선 전략 과제가 돼야 한다.
오승민 LG화학 러닝이노베이션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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