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으로 그린 '소나무 풍경화' 믿기시나요

입력 2022-06-15 17:33   수정 2022-06-15 23:49

대구시를 빼놓고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말할 수 없다. ‘한국 근현대 미술 개척자’ 중 유독 대구 출신이 많아서다. 근대미술의 이인성과 이쾌대, 추상미술의 정점식, 현대 한국화의 서세옥, 실험미술의 김구림·박현기·이강소 등이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도 미술계에서 대구의 힘은 막강하다. 대구 화랑협회에 등록된 화랑은 60여 곳으로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인구가 더 많은 부산과 인천을 제치고 ‘넘버2’가 된 것이다.

15일부터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장이규 화백(69)은 이런 대구 미술계의 맥을 잇는 작가다. 계명대 미술대학 학장을 지낸 그는 소나무가 있는 풍경(사진)을 많이 그려 ‘소나무 화가’로 불린다. 풍부한 색채를 쓰는 대구 출신 구상작가들을 일컫는 ‘영남화파’의 대표주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천착한 풍경화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그림으로 통한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너무 흔한 탓에 자칫 진부해보일 수 있어서다. 흔하디흔한 소나무를 그린 풍경화라면 더욱 그렇다. 화단에는 ‘소나무 화가’란 별명을 지닌 화가가 여럿 있다. 하지만 “장이규의 소나무는 다른 소나무들과 차원이 다르다”고 평가하는 전문가가 많다. 명도와 채도의 강렬한 대비, 독창적인 화면 구성이 자아내는 상쾌하고 청명한 분위기 덕분이다.

“소나무를 그린 지도 어느덧 50년이 넘었네요.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처음 접한 건 중·고등학교 시절 자주 가서 그림을 그렸던 경주의 계림 숲에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재 화가’ 손일봉 화백(1907~1985)이 수채화로 나무를 그리는 광경을 봤고, 그길로 소나무에 푹 빠져들었죠. 미술 교사가 된 이후에도 ‘나도 손일봉처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90년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변신했죠.”

장이규는 자연에 가까운 색채를 사용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대부분 상상화다. 머릿속에 있는 풍경과 소나무의 모습을 조합해 자신만의 질서와 조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사진을 연상할 정도로 사실적이면서도 컴퓨터 일러스트처럼 간결하고 정돈된 느낌을 준다. 단순화된 원경이 작품의 깊이와 함께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소나무 그림 ‘향수’ 연작 30점이 걸렸다. 대부분 여름이나 안개 낀 풍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전시는 3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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