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밤늦게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가 합의한 내용은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 및 대상 확대 △유가 상승에 따른 보조금 확대 △운송료 합리화 지원 등 화물연대의 요구사항을 거의 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화물연대가 끈질기게 주장한 일몰제 ‘폐지’라는 표현만 안 썼을 뿐, 안전운임제는 사실상 상시 제도가 된 데다 대상 품목 역시 확대돼 걸핏하면 산업계를 볼모로 힘자랑하는 화물연대 세력 확산에 절호의 기회를 쥐여준 꼴이 됐다.
모든 정부의 가격 개입이 그렇듯 화물차주에게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 역시 시장 기능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지난 정부에서 도입한 이 제도로 시멘트 차주들의 순수입은 2년 만에 110.9%나 올랐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시멘트 회사들이 안고, 결국 아파트 공사비 상승 등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안전운임위원회는 화물차주와 운수사를 합한 숫자가 화주 측보다 두 배나 많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게다가 화물운송업자 대상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운임 원가를 산출하니 앞으로도 안전운임은 지속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는 편향된 구조를 띠고 있다. 정부는 유가 보조금 확대와 운송료 인상까지 지원하기로 했으니 화물연대에 사실상 백기 투항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복귀한 화물연대 조합원에 대해 일절 불이익이 없도록 국토부가 협조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불법 행위로 입건된 화물연대 소속원들에 대한 형사적 선처와 함께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등 민사적 책임도 면제해주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번 사태로 산업계가 입은 피해가 2조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정부가 화물연대 사태가 흡사 천재지변인 양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법과 원칙, 엄정 대응을 누누이 천명한 윤석열 정부가 이전 문재인 정부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화주인 기업들에 엄청난 부담만 지우는 합의를 덜컥 해대는 권한이 정부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번 사태는 노동계에 만연한 집단 실력 행사에 의한 떼법 심리를 재용인해준 격이 됐다. 법치주의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이유도 그러해서다. 정권 초반부터 잘못 준 시그널이 두고두고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두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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