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기업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대거 없앤다. 경쟁국과 비교할 때 과도한 세부담을 줄여주고 땅에 떨어진 기업인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정책을 통해서다. 이를 통해 기업의 투자 본능이 되살아나면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법인세 최고세율, 文정부 이전으로 되돌려
정부는 16일 공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1990년(당시 34%) 이후 법인세 최고세율을 계속 내려왔지만, 문재인 정부는 2018년부터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다.그 결과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약 22%보다 높아졌다. 경쟁국가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하는 동안 한국만 '역주행'하다보니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악화되고,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법인세 과세표준 구간도 현행 4단계에서 2~3단계로 조정한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가들이 법인세 단일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법인세제가 너무 복잡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였다. 고광효 기획재정부 조세총괄정책관은 "법인단계에서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기업의 투자 여력을 축소하게 되고, 국내 기업은 해외 기업과 경쟁에서 뒤쳐질 우려가 있다"며 "불합리한 4단계 누진세율 구조를 단순화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과세표준 2억원 이하(법인세율 10%) 등 최고세율 외 다른 구간의 세율도 인하된다. 과표구간 조정 및 세율 인하 등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달 발표되는 세법 개정안에 담긴다. 법인세율을 내리면 세수가 줄어들어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최근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됐는데, 법인세 인하로 민간 경제 활력이 제고되면 결국 세수 확보로 연결될 것"이라고 답했다.
경제계에서 반대 목소리가 컸던 투자·상생협력 촉진세제도 폐지한다. 과거 기업소득환류세제로 불렸던 투자·상생협력촉진세는 기업들이 당기소득의 일정 비율(70%)을 투자, 근로자 임금 확대, 상생지원에 사용하지 않으면 미달액의 20%를 법인세로 내야하는 제도다. 기업의 소득을 사내에 쌓아두지 말라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투자 유인 효과가 크지 않고 이중과세라는 지적이 많았다.
가업승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도 나왔다. 가업을 승계한 상속인이 일정 요건을 갖출 경우 상속세 납부를 유예할 수 있다. 또 사전 가업승계 증여세 특례제도 대상도 늘린다. 대상에 포함되기 쉽지 않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수용했다. 대상 기업 매출액 기준을 4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상향하고, 사후관리 기간은 7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
정부는 아울러 국내 기업이 해외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에 대해서는 아예 과세를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해외 자회사의 배당금을 국내 모기업의 소득에 산입해 법인세를 물린 뒤, 외국에서 납부한 세액을 공제해줬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과세 체계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흔치 않다. 또 기업들이 해외 자회사가 벌어들인 돈을 국내에 옮겨오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외 자회사 배당금 비과세는 OECD 국가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다는 의미도 있다"며 "기업들이 해외에서 번 돈을 국내로 가져와 투자를 하는 '자본의 리쇼어링'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인 형사처벌 조항 대폭 줄인다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법적 규제를 없애는 정책도 포함됐다. 정부는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 경제법령상 형사처벌 조항을 행정제재로 바꾸거나 형량을 합리화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9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 관련 형사처벌 항목은 2657개에 달한다. 1999년(1868개)과 비교하면 42.2% 늘었다. 경제계에서는 "최고경엉자(CEO)가 되는 순간 예비 범법자가 된다"는 호소가 나왔다. 대표적인 과잉 처벌 법안으로 비판받던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령을 개정해 부작용을 최소화한다. 경영책임자가 져야 하는 의무를 확실하게 규정해 기업인의 우려를 덜겠다는 취지다.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등에 대한 부당지원 행위와 사익편취 행위 기준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심사지침도 개정된다.
강도높은 규제개혁도 진행된다. 규제 1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면 그 규제 비용의 2배에 해당하는 기존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원인 투아웃' 제도가 대표적이다. 부처별로 200% 내외의 규제 감축목표율을 설정해 자발적인 규제 감축을 유도한다. 경제 및 일자리 관련 규제를 새로 만들거나 강화할 때는 재검토 기한을 의무적으로 설정하는 내용의 규제일몰제 실효성 제고 방안도 포함됐다.
기업 규모가 크다고 불이익을 주던 관행도 대대적으로 없앤다.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규제 등 관행적으로 이뤄진 규제가 대표적이다.
대기업의 반도체와 백신, 배터리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은 현행 6~10%에서 8~12%로 인상된다. 미래 먹거리 기술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서다. 정부 관계자는 "각국이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세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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