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방영됐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입니다. 부모의 사채 빚을 떠안은 스물 한살 이지안에 대한 이야기죠. '초대박'까진 아니었지만 명대사가 쏟아지며 '인생 드라마'로 꼽는 마니아층이 많습니다. 어린 나이에 빚쟁이로 몰린 지안과 그를 보듬는 평범한 '어른 사람'의 모습에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는 후기들이 적지 않았죠. '연금술사'를 쓴 소설가 파울로 코엘류가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지안 역을 맡은 아이유는 '나의 아저씨'에 대해 "현실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며 "이런 현실이 있는데 어떻게 살고 있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메시지를 주는 드라마"라고 소개한 바 있죠.
이를 두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 내서 투자)' 후폭풍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위기가 시작됐는데요.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2030 세대가 높은 이자 부담을 안게 되면서 '빚 돌려막기'에 내몰린다는 지적입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보고서에서 “30대를 중심으로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LTI)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청년층의 취약차주 비중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며 “이런 증가세가 지속되면 채무상환 능력이 약화할 우려가 크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불법 사금융 피해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인데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채무자 변호사 무료 지원’을 신청한 불법 사금융 피해자는 1200명으로 전년(632명) 대비 두 배 증가했습니다. 신청자 10명 중 7명이 2030 세대일 정도로 젊은 층 비중이 높았는데요. 다른 연령대 신청자는 1년 전보다 모두 감소한 반면 20대(7.3%포인트)와 30대(3.2%포인트)만 증가한 점이 눈에 띕니다.
채권추심업은 한마디로 '빚을 대신 받아주는 영업활동' 입니다. 사업구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요. 부실채권을 매입해서 추심한 만큼 돈을 버는 업체가 있고, 추심을 위임받아 회수 금액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회사가 있습니다. 전자는 한빛자산관리대부, 후자의 경우 고려신용정보가 대표적입니다. 채권추심업의 특성상 빚을 제때 못 갚는 사람들이 증가할수록 '일감'도 함께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금리가 뛰고 주식·부동산 시장이 휘청이는 지금이 '물 들어오는' 시기인거죠. 리스크 요인도 존재합니다. 채권추심업이 국내 경기와 연관성이 있다는 건데요. 고려신용정보는 사업보고서에서 "국내 경기의 부진은 부실채권을 증가시키나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며 "실업률의 증가는 채무의 상환능력 및 의지를 저하시키는 중대한 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감의 절대적인 물량뿐만 아니라 채권의 액수가 커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가령 평상시에 100억원 규모의 채권추심 의뢰가 들어온다면 경기침체 시기엔 200억원, 300억원 규모의 의뢰가 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개별 채권의 회수율이 떨어질 수는 있어도 전체 일감의 양이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증권가에서는 하반기에 더 기대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종원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올 1월 기준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 금액은 약 130조원이고 그 중 이자 상환 유예 신청이 두 번 넘은 금액은 20조원 수준"이라며 "만기일인 9월 어떤 정부 정책이 나올지 예측하긴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연체 물량의 일부가 흡수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상거래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적당한 경기침체'를 채권추심업 시장의 우호적 환경으로 꼽았습니다. 17일 고려신용정보의 주가는 0.91% 내린 87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연초 대비 4% 가까이 올랐는데요. 코스피 지수가 같은 기간 17% 넘게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수익률이 양호 했습니다.
“31년 동안 사업가로 살았으니 남은 인생은 다른 사람을 돌보고 함께 배우며 살고 싶습니다.” 윤의국 고려신용정보 회장이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6월2일자 A20면 참조)에서 전한 말입니다. 고려신용정보의 창업주이기도 한 그는 지난 2일 퇴임했죠. 2000년 신용정보협회를 출범시키고 초대 회장까지 맡은 '국내 채권추심업계 1세대' 입니다. 윤 회장은 본인이 몸 담았던 채권추심업에 대해 "경제선순환을 위해 꼭 필요한 산업이지만 여전히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며 "업계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채권추심업호황이 예상되는 지금, 업계 대부의 고언(苦言)을 관련 기업들이 되새겨봐야 할 때 입니다.
박병준 기자 r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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