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부산 강서구 남해고속도로 서부산요금소에서 발생한 아이오닉5 충돌 사고 이후 전기차 화재 위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탑승자 사망 원인과 별개로 전기차 사고시 내연기관차보다 더 위험한 것 아니냐는 등의 막연한 불안감이 섞인 얘기들이 확산하고 있어서 입니다. 앞으로 전기차 판매량이 더 늘어나면 이와 같은 사고가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니 이번 사고를 되짚어 보고 전기차 화재 발생시 대피 요령까지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문제는 탑승자 사망 원인입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운전자와 조수석 동승자가 사망한 것은 과속·고속 주행에 따른 다발성 골절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국과수의 1차 사건조사 결과 사고 당시 속도가 약 90~100km/h로 운전자는 사고 직전까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이 교수는 또 "사망자 부검 결과 호흡기 쪽에 탄소, 매연이 끼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화재로 인한 연기가 폭발이 나기 전에 사망을 먼저 한 것이기 때문에 낮은 속도로 주행을 했음에도 (전기차이기 때문에)화재가 발생했다는 일부 소문은 잘못된 소견"이라고 짚었습니다.
또 사망한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도 추정됐습니다. 해당 차량에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아도 경고음을 나지 않게 하는 '안전벨트 클립'이 착용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수석은 의자가 완전히 뒤로 누워져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과수는 이번 화재 사고가 차량 충격에 의한 사망사고로 판단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전기차 화재로 인해 운전자와 동승자가 미처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이 교수는 "시속 90km 이상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안전등급을 높게 받은 차량이라도 손상은 불가피하다"며 "차량 제조사의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습니다.
전기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항상 우려되는 부분은 배터리 화재입니다. 이번 사고에서도 불길은 화재 7시간여 만인 다음 날 오전 6시 이후에야 겨우 잡혔습니다.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자정을 넘긴 시점에서 다 끈 줄 알았던 불이 다시 붙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기차 화재 진화가 이처럼 어려운 이유는 배터리가 철제로 덮여 있어 일반 소화제가 침투하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전기차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쉽사리 꺼지지 않기 때문에 차를 통째로 거대한 수조에 집어넣는 방식(침수법)으로 배터리 열을 식히면서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소방당국은 차 주변에 가벽을 쳐서 불이 인근 사물로 옮겨붙지 못하게 하는 조치도 취합니다.
소방당국에선 전기차 배터리가 충격을 받았을 때 온도가 순식간에 고온으로 치솟으면서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이른바 '배터리 열폭주'가 이번 사고 차량에서도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열폭주는 배터리가 외부 충격을 받아 손상되면 배터리팩 내부 온도가 순식간에 섭씨 500~800도까지 치솟는 현상입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열폭주는 1~2초 안에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번 사고에서도 3초 만에 차량 전체로 불길이 휩싸였습니다.
전기차 운전자라면 사고시 어떻게 대응 해야할까요? 우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팔고 있는 테슬라의 화재 대응 매뉴얼을 보겠습니다. 이 매뉴얼에 따르면 배터리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고 냉각시키려면 약 3000갤런의 물을 배터리에 직접 분사해야 합니다. 특히 배터리 내부로 물이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손상된 부분에 집중 투입하면 효과가 좋습니다. 하지만 3000갤런은 1만1356L쯤 되는데 이는 대형 소방차 3대 분량이 실을 수 있는 양입니다. 물이 즉시 공급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물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Co2, 거품 또는 다른 일반적인 소화 물질을 사용해 화재를 진압해야 합니다. 사실상 사고를 당한 개인이 하기 어려운 작업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발생한 테슬라 화재 사고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 8명이 총 7시간에 걸쳐 불을 껐습니다. 당시 화재 진압에 사용한 물은 총 10만L로 해당 소방서에서 평균 한 달 동안 쓰는 물의 양이었다고 합니다. 통상 우리나라에서도 10만L면 작은 야산에서 일어난 불을 끌 수 있는 정도의 양입니다. 만약 배터리 용량이 더 컸으면 더 많은 물이 필요했을 겁니다. 이 사고 이후 미국 교통안전위원회는 모든 완성차 제조업체에 전기차 화재 초기 대응 매뉴얼이 부실하다며 차량 충돌로 인해 차량 내 자동 전류 차단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화재를 진압해야 하는지 안내를 보완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이번 부산에서 사고난 차량은 아이오닉5입니다. 아이오닉5의 차량 화재 시 매뉴얼을 보면 고전압 배터리가 파손돼 인체에 유해한 가스와 전해액이 누출될 수 있으니 빨리 피하라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또 시동을 끄고 소화기 등으로 진화하라고 담겨있습니다. 이번 부산 사고에서도 소방관 십수명이 출동해 7시간 넘게 물을 들이붓고서야 꺼졌습니다. 개인이 소화기 등으로 화재를 감당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화재가 나면 전동식으로 작동하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점도 위험 요소입니다. 실제 2020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발생한 테슬라 '모델X' 화재 사고 때도 배터리 화재로 전자계통 부품이 망가져 전동식으로 열리는 매립식 손잡이가 열리지 않아 구조가 지연됐고 결국 운전자가 숨지기도 했습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로 인한 연기 때문에 내부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창문을 깨면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대원들은 결국 트렁크 부분을 뜯고 차량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테슬라는 일반 차량과 달리 문을 여는 손잡이가 숨겨져 있습니다. '히든 도어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 때문에 사용자는 도어핸들을 터치한 뒤 손잡이가 차체 바깥으로 나와야만 외부에서 문을 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계통 부품이 망가지면 손잡이가 튀어나오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내부에선 전력이 끊기는 비상상황을 대비해 수동 도어 해제 장치를 설치해뒀습니다. 문제는 1열 도어에만 기계식 도어 해제 장치가 있기 때문에 차량 사고로 앞문이 찌그러진 경우 내부에서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국내 제조사의 경우 구조가 조금 다릅니다. 아이오닉5의 경우 사고가 발생한 뒤 에어백이 전개되면(터지면) 자동으로 전좌석 문이 언락(Unlock) 상태로 바뀌면서 손잡이가 튀어나옵니다. 국내 차량 안전 법규상 이 같은 조치를 취해놓아야만 전기차 안전인증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의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에서 안전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별도의 안전인증을 받지 않아 이 같은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기차 전체 차량 대수 대비 화재사고율은 0.02%로 전체 차량 화재사고율인 0.02%과 비슷합니다. 이를 보면 무조건 전기차가 화재위험이 더 높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연기관 차량은 전면부에 연료통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력한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엔진룸 주변부터 시작해 서서히 연소가 이뤄지므로 주변에서 차량 탑승자를 구할 시간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더 있습니다. 실제 지난 BMW 화재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탑승자가 화재로 죽는 사건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와 달리 전기차는 일단 충돌사고가 발생하면 거대한 폭탄을 지닌 위험물로 탈바꿈합니다.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로 이뤄진 전기차 배터리에 손상이 가해지면 분리막이 파열되면서 양극과 음극이 만나 화재가 발생하게 됩니다. 전기차 한 대에는 수천개의 배터리가 셀을 이뤄 탑재돼 있는데 셀 안에 불이 나면 옆에 있는 셀로 옮겨 붙으면서 급속도로 열이 오르는 '열폭주'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업계에선 당장은 아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전기차 화재 위험도가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의 리튬이온 방식이 아닌 전고체, 인산철 배터리의 경우 재료의 특성 때문에 화재 위험이 훨씬 낮습니다. 또 배터리셀과 차체 사이의 격벽을 보강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로 떠오릅니다.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기까지 전문가들은 빨라야 5~10년 정도를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전기차 화재 위험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전문가들은 전기차 설계상 하부에 배터리가 장착돼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최대한 포장도로에서만 주행할 것, 그리고 규정속도를 지키는 '안전운전' 밖에는 답이 없다고 합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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