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창간한 ‘여행지 맛집 찾아주기’의 원조 미쉐린가이드. 최고 영예인 3스타의 기준은 이렇다. ‘오직 그 맛을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떠날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 이 기준을 숙소에 적용하면 어떨까. ‘오직 그곳에서 하룻밤 잠들기 위해 기꺼이 떠날 가치가 있는 숙소.’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 있다. 30채가 넘는 제주의 돌집을 럭셔리 독채 스테이로, 서울 북촌과 서촌 일대 낡은 한옥을 ‘한옥 스테이’라는 테마로, 전국 곳곳의 낡은 집들을 프리미엄 로컬 숙소로 재탄생시킨 이상묵 스테이폴리오 대표(41)다.
5성급 호텔에 맞먹는 가격이라 “곧 망할 것”이라는 얘기도 많았다. 하지만 1980~1990년대생들은 열광했다. 천편일률적 호텔방을 벗어나 ‘단 한 번이라도 압도적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기꺼이 스테이폴리오로 몰렸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매일 밤 잠들기 전 스테이폴리오 사진만 봐도 힐링이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스테이폴리오는 여행 패턴을 바꿨다. 여행지를 정한 뒤 머물 곳을 찾는 게 아니라, 머물 곳을 먼저 정한 뒤 여행 계획을 짜는 ‘스테이 중심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젠 기업 총수의 별장,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 산골의 오두막에서 바닷가의 낡은 할머니집까지 입점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 엔데믹을 계기로 베트남, 일본, 대만, 프랑스 등 해외 곳곳의 숨어 있는 명품 숙소 큐레이션도 시작했다.
그동안 돌아다녔던 숙소 리뷰를 모아 ‘스테이(stay)’와 ‘포트폴리오(portfolio)’를 합친 스테이폴리오 블로그를 열고 여행객들과 공유했다. 숙박업소를 단순 연결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왜 가치 있는 숙소인지, 왜 가봐야 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며 소통했다.
2015년 스테이폴리오를 법인으로 만들었고, 이듬해 실시간 숙박 예약 관리 서비스를 내놨다. 제로플레이스를 만든 지인 3인방과 건축사무소 지랩을 창업해 스테이폴리오의 철학을 구현하는 시그니처 숙소를 직접 짓기 시작했다. ‘눈먼고래’에서 시작한 제주의 돌집 개조 프로젝트, 1927년 지어진 한옥 폐가를 독채형 렌털하우스로 탈바꿈한 ‘창신기지’, 양양의 서핑호텔 ‘브리드호텔’ 등이 모두 이들의 작품이다.
“로비를 시작으로 층층이 수직적으로 쌓아올린 호텔의 구조를 수평으로 눕혀놓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어요. 한 권의 도감, 창작소, 라운지 등 공용공간 역할을 하는 곳과 10개의 한옥스테이를 지랩이 설계하고 스테이폴리오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1박 15만원 안팎이던 제주의 돌집 민박들도 지랩의 손을 거쳐 프리미엄 독채 하우스가 됐다. 제주 전통 가옥의 뼈대를 최대한 살리고 주변 바다, 농촌 풍경과 어우러지는 건축물들은 이제 30채가 넘는다. 로컬 콘텐츠와 숙박의 결합은 스테이폴리오가 가장 중시하는 일이다. 순천 바구니호스텔을 기획할 땐 기차 여행객을 대상으로 순천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콘텐츠로 만들었다. 통인시장 엽전에서 영감을 받아 바구니 코인을 다양한 숙소 내 조식, 어메니티와 연결해 결제하거나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스테이폴리오의 홈페이지와 앱은 잘 꾸며진 갤러리와 같다. ‘풍부한 감각의 흐름을 느끼다’ ‘자신을 돌아보는 아날로그의 시간’ ‘옛 공간을 오늘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다’ 등이 장소를 서술하는 테마다.
스테이폴리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스테이폴리오는 지난해 11월 K-스테이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제주 조천읍의 1097㎡(331평) 규모 ‘밭담집’ 건축비 1억원을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모집했는데 예상 모집금액보다 9000만원이 더 모였다. 투자자들에게 전원 연 2%의 금리로 수익금을 돌려주고 멤버십과 바우처 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함께 만드는 집’을 만들어가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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