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독일 국채(분트)와 이탈리아 국채의 10년 만기 기준 금리격차(스프레드)는 2.0%포인트를 기록했다. 이탈리아 채권 금리가 독일보다 이만큼 높다는 의미다. 격차가 확대될수록 이탈리아 정부의 이자 등 상환 부담은 커진다.
질 뫼크 프랑스 AXA그룹 수석경제학자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2010년대 유럽을 수렁에 몰아넣었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채무위기의 데자뷔가 느껴진다”고 밝혔다. 국채 금리 상승은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페인, 그리스 등 고질적인 재정난을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금리도 최근 급격히 오르고 있다.
ECB가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이들 국가의 차입비용이 불어날 것이란 우려 때문에 투자자들이 국채를 내다팔고 있는 것이다. 국채 가격 하락은 곧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로존 경제가 분열될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것도 유로존 회원국 간 채권금리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가팔라지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FT는 “지금의 상황은 2012년 유로존 채무위기에 비해 더 심각하다”는 진단도 내놨다. 유로존 일부 국가의 재정지출 규모가 10년 전보다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으로 남유럽 국가들의 주요 수입원인 관광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유럽 국가들이 지출을 늘리게 하는 악재다.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2년 127%에서 현재 150%로 높아졌다. 그리스도 같은 기간 162%에서 185%로 확대됐다. 경기 둔화로 각국 유로존의 세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걱정스럽다는 분석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이날 유로존 재무장관 회담에서 회원국 간 채권금리 차이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면 새로 만들고 있는 위기 대응 장치를 곧바로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무장관 회담에서 비이성적인 시장 움직임이 회원국에 압력으로 작용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새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각에선 유로존을 바라보는 비관적인 시각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의 선임 경제고문인 프란체스코 지아바치는 “2010년대 재정위기를 겪은 ECB와 각 회원국의 중앙은행은 위기 대처 능력이 탄탄해졌다”며 “EU는 공동 기금 등을 통해 회원국의 채무 비율을 줄여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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