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빙 마이 바이오[정삼기의 경영프리즘]

입력 2022-06-17 12:47  

이 기사는 06월 17일 12:4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젠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가라앉으며 보복여행, 보복소비, 보복회식이라는 이유로 어딜 가나 북적입니다. 요즘처럼 부드러운 공기로 넘치는 초여름 저녁은 야외활동에 그만입니다. 그런 정상 회복에서 자그마한 동반자가 나타났습니다. 이 동반자가 조용히 혁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팬데믹은 소득, 나이, 지역을 불문하였습니다. 이런 무차별 공격을 전쟁 이상으로 상대해야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의료 시스템입니다. 대면진료는 평화가 아닌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원격진료가 절실했지만 시스템의 한계와 사람들의 인식 등 여러 이유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 몸 곳곳에 부착된 기기, 즉 '웨어러블'을 통해 환자 정보가 수집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건강 관심자의 '엣지' 정도였던 웨어러블이 일상의 '반려기기'로 변했습니다.

웨어러블은 피트니스트렉커, 스마트워치, 반지, 패치, 띠, 핀, 스마트양말 같은 의류까지 다양한 형태로 수면, 체온, 호흡, 혈압, 혈당, 심장박동 등 신체의 거의 모든 변화를 감지해냅니다. 애플워치와 구글의 핏빗으로 대표되는 웨어러블 시장은 2015년 80억 달러에서 2021년 290억 달러로 450% 증가하며 스포츠용품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북미 지역은 판매량이 두 배 이상, 서유럽과 중국은 세 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2019년 애플워치 판매량은 스위스 전체 시계 산업을 추월하였습니다.

웨어러블을 구동하는 인공지능(AI) 앱도 변하고 있습니다. AI 앱은 2015년에는 '웰니스(wellness)'를 중심으로 운동, 생활방식, 스트레스, 다이어트와 영양이 70% 이상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2021년에는 '건강상태(health-condition)' 비중이 커지며 질병, 여성 건강과 임신, 약 복용, 의료서비스 등 전문 분야가 절반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의료계에서는 웨어러블이 진료의 질을 높인다는 것을 점차 인정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영리 중심인 미국 의료 시스템마저 웨어러블을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런 웨어러블이 세 방향으로 디지털 치료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가장 기본적인 '간섭형'입니다.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에게는 음식조절, 식후걷기, 약 복용 등 습관 유지에 집요한 잔소리가 사소하지만 엄청난 효과를 발휘합니다. 둘째는 '개입형'으로, 불면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보조적인 원격치료가 그런 예입니다. 마지막으로 '돌파형'으로, 뇌의 신경망 재구축 같은 생물학적 구조 변화를 통해 질병 진행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미 음악으로 뇌연결망을 회복시켜 뇌졸중환자의 재활을 돕고 있습니다.

혁신은 스타트업과 제약업계의 제휴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치료 시장은 2020년 33억 달러로, 향후 5 내지 10년 동안 매년 20%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스타트업들은 의약품 유통망과 인력 시스템을 갖춘 제약업계를 필요로 합니다. 제약업계는 약품 효능 향상과 매출 확대, 브랜드 제고에 디지털 치료가 도움이 되기에 제휴를 환영합니다. 무엇보다 디지털 치료를 통해 생성되는 엄청난 규모의 정보에 군침을 흘립니다.

식품업계도 웨어러블 기반의 맞춤형 영양 앱 개발을 통해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습니다. 2015년 이스라엘 연구진은 음식 유형별 혈당 변화 알고리즘을 도출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혈당, 수면, 운동, 체중, 키 등 신진대사 요소와 위장 미생물군까지 동원됩니다. 맞춤형 다이어트 AI(인공지능)도 부상 중입니다. 아이스크림에 견과를 살짝 뿌리거나 회의 중간에 빈 시간을 가볍게 걸으라며, 친근하게, 간청조로, 때로는 명령조로 채근합니다.

사람들의 생활습관과 질병, 치료의 상관관계 분석 역시 더욱 정교해질 것입니다. 제약회사는 임상실험을 이유로 실험실에서 수면을 측정합니다. 심혈관질환 검사에서 가장 보편적인 '6분보행검사(6MWT)'는 6분 동안 환자의 최장 보행거리를 측정합니다. 건강검진에서 문진표는 단골 메뉴입니다. 이런 수면과 보행과 문진표가 가장 편안하고 정확하다고 의료진이나 환자 모두 장담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일상의 웨어러블이라면 '탄광 속의 카나리아' 역할이 가능할 겁니다.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 중반부터 떠오른 소위 '자가 건강 측정(quantified self)'시대의 연장선으로,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대전환을 예고합니다. 질병관리가 의료진 주도의 '사후 치료'에서 이제 의료진과 환자 간의 균형을 통한 '예방' 중심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런 대전환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의식 제고와 더불어 의료서비스의 보편화를 의미합니다.

이런 가운데 스탠포드 디지털경제연구소장 에릭 브리뇰프슨은 희망 섞인 전망을 합니다. 작금의 AI 기술이 인간지능 모방에 치우치며 인간의 역량 확대와 새로운 일자리 창출보다는 단순히 인간 노동력 대체와 자동화로 편향되며 기업과 일자리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의료 시스템이야말로 이런 양극화를 피하면서 근본적인 혁신과 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장수하며 노년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면, 경제에 부담이 아닌 도움이 된다는 경제학자다운 고민입니다.

하지만, 의료계의 움직임은 여전히 더뎌 보입니다. 유난히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의료계의 디지털 혁신이 팬데믹 대응과 함께 영리 중심인 서구 특히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한 반작용 때문에 촉발되었다는 게 역설적입니다. 혁신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시스템을 갖춘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런 의료 생태계가 기술의 힘으로 변한다면 양 못지않게 질적인 수준도 높아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아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마블 슈퍼히어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주인공인 연극연출가는 배우들을 끊임없이 다그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내면에는 눈을 뜨지 못합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차를 모는 전속 기사와 마음을 열면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게 됩니다. 사람의 치유에는 사람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기계가 조력이 된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망치로 파리를 쫓다가 제 몸 다치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겁니다.

*필자는 삼일회계법인과 KDB산업은행에서 근무했으며 벤처기업 등을 창업·운영하였습니다. 현재는 사모펀드 운용사 서앤컴퍼니의 공동대표로 있습니다. <슈퍼파워 중국개발은행>과 <괜찮은 결혼>을 번역했고 <디지털 국가전략: 4차산업혁명의 길>을 편역했습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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