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문제는 국회의 ‘마구잡이식’ 공공기관 늘리기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공공기관을 새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대부분 국회의원들이 공공기관 신설 근거가 되는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국회의원은 지역구 유권자나 관련 업계의 민원을 받고 공공기관 신설 법안을 내놓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1대 국회가 개원한 2020년 1년간 57건의 공공기관 신설 법안이 발의됐다. 이런 법안에 주무부처나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대체로 부정적 의견을 피력할 때가 많다. 신설 기관의 업무가 기존 기관이나 민간에서 이미 하는 일과 겹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공공기관 신설을 밀어붙인다.
올해 초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이 대표적이다. 기재부가 ‘기존 기관과 업무가 겹친다’는 의견을 냈지만 국회는 설립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가 설립을 추진하는 고도역사문화환경연구재단은 기재부는 물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문위원들도 검토 보고서에서 ‘기존 기관과 업무 중복’을 우려했다. 보고서는 “문화재청 산하에 9개 국립문화재 연구소가 있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연구원 10곳도 비슷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며 “(신설하려는) 재단과 기능 중복 우려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문광위는 설립안을 통과시켰고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올라가 있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자 정 의원은 공공기관 신설 법안 심사 때 정부 의견을 의무적으로 듣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지역구 사업 민원 해소와 주무부처의 암묵적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기관 신설 법안 발의가 증가하고 있다”며 “공공기관 간 기능 중복은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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