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시장 혼돈·불확실성 크다"…최태원 "경영시스템 확 바꿔야"

입력 2022-06-19 17:14   수정 2022-06-20 00:39

“시장에 여러 가지 혼돈과 변화, 불확실성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출장을 다녀오면서 한 말이다. 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이 시장 급변에 따른 ‘위기 대응’에 초점을 맞춰 경영전략을 재정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기술 대응 강조한 이재용
이 부회장은 7~18일 12일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헝가리, 프랑스 등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그는 18일 김포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국에선 못 느꼈는데 유럽에 가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훨씬 실감했다”며 시장 불확실성부터 언급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도 기술 같다”며 초격차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제계에서는 삼성이 기술 고도화를 위한 인력 확보와 조직 유연성 강화 등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본다. 이 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저희(삼성전자)가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데려오고, 조직이 예측할 수 있는 변화에 적응하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의 핵심 성과로 네덜란드 ASML 방문을 꼽았다. 그는 “ASML과 반도체연구소에 가서 앞으로 차세대, 차차세대 반도체 기술이 어떻게 되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ASML은 극자외선(EUV)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업체다. 이 부회장은 이 밖에 헝가리 삼성SDI 배터리 공장, 하만카돈 등을 방문하며 향후 경영 전략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 안팎에선 21~28일 열리는 삼성전자 글로벌전략회의에서도 기술을 중심으로 한 하반기 전략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위기는 기술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이 부회장의 주문”이라며 “신기술을 발굴하고 키우는 데 무게가 쏠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비상 걸린 기업들
삼성 이외의 다른 그룹사들도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주목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안팎을 맴도는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Fed에 보조를 맞춰 금리를 올리면 자금 조달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환율도 복병으로 꼽힌다. 원·달러 환율은 17일 1287원30전에 마감하며 1300원에 근접했다.

기업들은 전사 차원의 대응 회의를 열고 위기를 극복할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SK그룹은 17일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임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2년 확대경영회의’를 열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원자재 가격 급등 등 대내외 위기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최 회장은 “새로운 경영시스템(SK 경영시스템 2.0)을 구축해야 한다”며 “현재 사업 모델을 탈출하는 방식의 과감한 경영 활동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 포스코그룹 등도 위기 대응 회의를 열 계획이다. LG그룹은 이미 구광모 회장 주재로 2019년 이후 3년 만에 상반기 전략보고회의를 열고 있다. 지난달 30일 LG전자를 시작으로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가 차례로 현안을 점검 중이다. 현대차와 기아도 다음달 ‘해외 권역 본부장 회의’를 연다. 포스코그룹은 최정우 회장이 주재하는 그룹경영회의를 다음달 개최한다. 경제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분위기”라며 “기존에 세운 전략을 전면 수정하려는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지은/김익환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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