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접시 깨도 OK' 해야 규제 풀린다

입력 2022-06-19 17:52   수정 2022-06-20 12:12

“과거 정부 때 ‘무조건 담보를 잡아야만 대출해주는 건 말이 안 된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은 미래 가치를 보고 대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대출할 때 담보를 잡아야 한다’는 규정을 없앤 적이 있습니다. 이후 국책은행에서 담보를 안 잡고 대출했는데, 대출받은 기업 직원이 대출금을 가지고 튄 사례가 나왔어요. 그러자 ‘왜 담보도 안 잡고 대출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고, 담당자는 징계를 받았죠.”

얼마 전 경제부처 공무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전 정부들도 규제개혁을 외쳤는데 왜 잘 안됐느냐’고 묻자 나온 대답이었다. 그는 “그런 일이 있고 나면 공무원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관료는 사석에서 이런 말도 했다. “공무원은 10골을 넣어도 1골을 먹으면 문책을 당합니다. ”
"10골 넣고 1골 먹어도 문책"
윤석열 정부가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규제개혁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기업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를 풀어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 체질을 정부 주도에서 시장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방향은 맞다. 관건은 실행력이다. 역대 정부도 규제개혁을 외쳤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했고,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빼주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혁명적 접근’을 약속했다. 모두 성과는 미흡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역대 정부의 규제개혁은 ‘반짝 드라이브’에 그칠 때가 많았다. 정부에서 규제개혁 일을 해본 한 기업인은 “의료 규제나 서비스 산업 규제를 풀려고 하면 직역 단체나 노조, 시민단체들이 기를 쓰고 달려드는 데다 심지어 정부 내에서 관련 부처가 반대할 때도 많다”며 “그러다 보면 대통령은 표 계산을 하게 되고 규제개혁 동력도 사그라든다”고 했다. 대통령이 끝까지 힘을 실어줘야 규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법 규제도 문제다. 정부 규제는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걸러지는데 국회는 그런 절차가 부실하다. 길홍근 한국규제학회 부회장은 “의원 입법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과잉이고 졸속”이라며 “국회 사무처나 입법조사처를 통해 비용편익 분석을 하거나 전문가 필터링을 거쳐 입법 퀄리티(질)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했다.
공무원 보신주의 바꿔야
공무원의 보신주의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기업 입장에선 이게 더 큰 문제일 때가 많다. 대부분 규제는 시행령이나 지침, 지방정부 인허가 사안으로 위임돼 있어 위에서 아무리 규제 철폐를 외쳐도 현장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는 게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들도 할 말이 있다. 규제를 풀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안 그래도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다. 설거지하다 접시 깼다고 처벌하면 접시를 깨지 않으려고 빈 그릇을 쌓아두는 보신주의가 만연한다. 즉, 규제개혁에 성공하려면 ‘설거지하다 접시 깨도 좋다’는 사인을 확실히 줘야 한다.

공무원 비리까지 봐주자는 게 아니다. 정책적 판단과 절차에 따라 규제를 풀었다면 나중에 문제 삼아선 안 된다는 말이다. 감사원엔 이미 이런 면책 제도가 있다. 하지만 막상 문제가 터지면 여전히 처벌을 피하긴 어렵다는 게 공무원들의 얘기다. 이런 환경에선 대통령과 총리, 장관이 아무리 규제개혁을 외쳐도 일선 공무원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움직이는 시늉만 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규제개혁은 물 건너가고 다음 정권은 다시 규제개혁을 부르짖는 일이 반복된다. 이젠 이 ‘도돌이표’를 멈출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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