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제부처 공무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전 정부들도 규제개혁을 외쳤는데 왜 잘 안됐느냐’고 묻자 나온 대답이었다. 그는 “그런 일이 있고 나면 공무원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관료는 사석에서 이런 말도 했다. “공무원은 10골을 넣어도 1골을 먹으면 문책을 당합니다. ”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역대 정부의 규제개혁은 ‘반짝 드라이브’에 그칠 때가 많았다. 정부에서 규제개혁 일을 해본 한 기업인은 “의료 규제나 서비스 산업 규제를 풀려고 하면 직역 단체나 노조, 시민단체들이 기를 쓰고 달려드는 데다 심지어 정부 내에서 관련 부처가 반대할 때도 많다”며 “그러다 보면 대통령은 표 계산을 하게 되고 규제개혁 동력도 사그라든다”고 했다. 대통령이 끝까지 힘을 실어줘야 규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법 규제도 문제다. 정부 규제는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걸러지는데 국회는 그런 절차가 부실하다. 길홍근 한국규제학회 부회장은 “의원 입법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과잉이고 졸속”이라며 “국회 사무처나 입법조사처를 통해 비용편익 분석을 하거나 전문가 필터링을 거쳐 입법 퀄리티(질)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했다.
공무원들도 할 말이 있다. 규제를 풀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안 그래도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다. 설거지하다 접시 깼다고 처벌하면 접시를 깨지 않으려고 빈 그릇을 쌓아두는 보신주의가 만연한다. 즉, 규제개혁에 성공하려면 ‘설거지하다 접시 깨도 좋다’는 사인을 확실히 줘야 한다.
공무원 비리까지 봐주자는 게 아니다. 정책적 판단과 절차에 따라 규제를 풀었다면 나중에 문제 삼아선 안 된다는 말이다. 감사원엔 이미 이런 면책 제도가 있다. 하지만 막상 문제가 터지면 여전히 처벌을 피하긴 어렵다는 게 공무원들의 얘기다. 이런 환경에선 대통령과 총리, 장관이 아무리 규제개혁을 외쳐도 일선 공무원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움직이는 시늉만 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규제개혁은 물 건너가고 다음 정권은 다시 규제개혁을 부르짖는 일이 반복된다. 이젠 이 ‘도돌이표’를 멈출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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