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클래식, 세계를 제패하다

입력 2022-06-19 17:33   수정 2022-06-20 00:59


“직전 대회 우승자가 한국인이었는데 두 번 연속으로 한국인 연주자에게 우승 트로피를 주겠는가?”

지난 14일 세계적 권위의 클래식 경연대회인 제16회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의 결선 무대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음악계에는 ‘한국인 2연패’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2017년 열린 제15회 대회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우승했기 때문에 6명이 겨루는 결선에 오른 임윤찬이 우승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밴 클라이번 같은 세계적 콩쿠르가 두 대회 연속 같은 나라 연주자에게 1위를 주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18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17일 미국 포트워스 베이스퍼포먼스홀에서 열린 최종 라운드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하며 이런 관측을 잠재웠다. 현장에서는 임윤찬의 우승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19일 콩쿠르 웹캐스트를 통해 세계에 생중계된 시상식에서 이변은 없었다. 임윤찬은 역대 대회 최연소 우승자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 메이저 클래식콩쿠르에서 한국인이 2연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젊은 한국 연주자들이 올해 열린 주요 클래식음악 국제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K클래식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지난달 29일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장시벨리우스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첫 낭보를 전했다. 이달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엘리자베스콩쿠르에서는 첼리스트 최하영(24)이 1위에 올랐다.

이어 세계 3대 콩쿠르 못지않은 권위를 지닌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임윤찬 우승까지 최근 한 달 새 열린 메이저 콩쿠르를 한국인이 싹쓸이한 것이다. K팝에 이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앞둔 세계 10위 경제력에 맞게 문화의 꽃인 클래식에서도 한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제식 교육으로 체계적 훈련
치열한 경쟁시스템 거쳐 성장…공연장 인프라 확충도 도움
음악계에서는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약진하는 요인으로 우선 국내 음악교육의 우수성을 꼽는다. 1980년대 유럽과 미국 등으로 유학을 떠났던 음악가들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등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거 귀국하면서 후학 양성에 적극 나섰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한국 연주자들은 도제 교육식으로 체계적인 학습을 받고 입시 및 각종 콩쿠르 등 치열한 경쟁 시스템을 거쳐 성장한다”며 “어릴 때부터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스승과 부모의 교육을 잘 따르는 것도 콩쿠르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클래식 공연장 등 인프라 확충과 공연 기획 활성화로 재능 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국내에서 연주할 기회가 많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임윤찬은 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으로 지난해 국내 투어 리사이틀을 했고, 협연곡들도 올해 강남심포니, 국립심포니 등과 함께 큰 공연장에서 연주했다.

한정호 에투알클래식 대표는 “임윤찬뿐 아니라 양인모도 콩쿠르에서 경연한 곡들을 최근 1~2년 사이 국내 공연장에서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며 “국제 대회에서 부담없이 제 실력을 발휘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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