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한국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 더CC(파70ㆍ7264야드)에서 열린 남자골프 최대 메이저 대회인 122회 US오픈(총상금 1750만 달러)을 앞두고 매트 피츠패트릭(27.잉글랜드)은 가장 먼저 숙소 예약에 나섰다. 시설 좋고 교통이 편리한 숙소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9년 전, 같은 대회장에서 열렸던 US아마추어 오픈 당시 자신이 이용했던 바로 그 집을 잡으려 애썼다. 미국 무대에서 자신의 영광이 시작된 바로 그 숙소에서 그때의 기운을 받기 위해서다. 보스턴 글로브는 "피츠패트릭이 2013년 윌 풀턴이라는 더CC 회원 집을 빌려서 지냈는데 올해 역시 그집에서 당시 이용했던 바로 그 침대에서 잤다"고 소개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는 아직 한번도 우승을 올리지 못한 피츠패트릭을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칼을 갈았다. 우승의 기억이 있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피츠패트릭은 "이 코스에서는 누구와도 해볼 만하다고 자신했다"고 뒤늦게 털어놨다.
더CC와 잠자리의 기운 덕이었을까. 세계 톱랭커들을 애먹인 깊은 러프와 어려운 그린에서도 피츠패트릭은 펄펄 날았다. 1라운드부터 2언더파를 치며 우승경쟁에 뛰어들더니 최종라운드까지 내내 선두를 지켰다. 20일 열린 4라운드에서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 2020∼2021시즌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신인왕 윌 잴러토리스(이상 미국)가 치열하게 추격했지만 송곳같은 아이언샷을 앞세워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US아마추어와 US오픈을 한꺼번에 거머쥔 첫번째 외국인이자, 잭 니클라우스·줄리 잉스터에 이어 US아마추어와 US오픈을 같은 코스에서 우승한 세번째 선수라는 기록도 만들었다.
피츠패트릭은 프로 데뷔 9년차, DP월드투어(옛 유러피안투어)에서 7승을 올렸다. 하지만 2020년 합류한 PGA투어에서는 아직 무관의 실력자였다. 키 178cm에 70kg의 평범한 체구로 거구의 톱랭커들을 상대한 비결은 피나는 노력이었다. PGA투어에 따르면 피츠패트릭은 15살 때부터 대회때는 물론 연습때에도 샷 하나하나를 기록한다. 목표지점과 사용한 클럽, 샷의 캐리와 오차를 하나하나 기록해왔다. 자신의 샷에 대해 그 누구보다 방대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쌓으며 한발씩 나아간 셈이다. 아버지 러셀은 "아들과 일주일 가량 함께 있다보면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18번홀 플레이에서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빛을 발했다. 이날 잴러토리스와 공동선두로 경기를 시작한 피츠패트릭은 경기 내내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였다. 18번홀(파4)을 앞두고 1타차까지 추격을 허용한 상황, 피츠패트릭의 티샷이 벙커에 빠졌다. 여기서 보기를 범하면 승부가 연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는 9번 아이언을 바짝 짧게 잡고 자신있게 공을 때렸고 공은 핀 6m 옆에 멈췄다. 2퍼트 파로 1타차 선두를 지켜냈고 잴러토리스가 버디퍼트를 놓치자 그제야 피츠패트릭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올해 가장 아쉬운 샷이 18번 홀 티샷이었고, 올해 가장 좋았던 샷은 바로 그 홀의 두 번째 샷이었다"며 "두 번째 샷을 하는 순간 느낌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다"고 짜릿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피츠패트릭의 우승은 베테랑 캐디 빌리 포스터에게도 커다란 감격을 선사했다. 포스터는 30년 넘게 캐디로 활동하며 리 웨스트우드, 타이거 우즈 , 토마스 비욘 등과 함께했찌만 메이저 대회와는 유독 연이 닿지 않았다. 이날 우승이 확정되자 피츠패트릭은 포스터와 가장 먼저 포옹하며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포스터는 눈물을 훔치며 '18'이 적힌 붉은색 US오픈 깃발에 입을 맞췄고 자신의 첫 메이저 대회 깃발을 걷어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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