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즐긴 제로금리와 유동성 파티의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자산시장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도중에 투자를 정리할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코스피는 지난해 여름 고점을 찍은 뒤 10% 정도 조정을 받아 올초까지 횡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각국의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이 큰 폭의 경기 반등을 이끈 터였다. 2020년과 2021년에 걸친 성장률 반전은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미국은 -3.4%에서 5.7%로, 유로존은 -6.4%에서 5.3%로, 한국은 -0.9%에서 4.0%로 각각 돌아섰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간헐적으로 나오긴 했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의 위기 타개 노하우에 대한 신뢰가 더 컸다. 지구촌 투자시장은 적벽 전체를 사슬로 묶은 조조의 대연환 작전처럼 팬데믹 앞에서 공동운명으로 묶여 있었다. 누구도 섣불리 대오를 이탈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동학개미라 불린 개인 투자자들의 연대감은 더 컸다. 그들은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지수가 급락하자 외국인과 기관투자가 매물을 받아내면서 기어이 상승장을 만들어냈다. 주식투자 역사상 최초의 개미 혁명이었다. 한국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개미군단은 전 세계 시장에서 진격을 거듭했다. 공매도로 악명 높은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들을 초토화시키며 엄청난 전리품을 챙겼다. SNS와 주식토론방을 통해 조직화된 개미들은 푼돈으로 덤벼들던 예전의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득 날이 저물고 찬바람이 몰아치면 한낮에 이글거리던 태양도 언제 그랬나 싶은 게 투자의 세계다. 지난 2년간 시장을 끌어올렸던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전 세계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악재가 충분히 반영돼야 주가 반등을 기대할 텐데, 인플레이션과 전쟁이 물러가도 경기침체라는 또 하나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문제다. 주요국 성장률은 분기별 수정을 받으며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올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2.5%, 유로존은 2.6%, 한국은 2.7%에 머물고 있다. 전년에 비해 거의 반토막 난 성장률이다. 거시지표가 이렇게 뒷걸음질 치면 기업 실적도 좋을 수가 없다.
주가는 숫자가 아니라 방향성의 지배를 받는다. 경기 바닥이 보이기 전까지는 주가의 추세적 반등이 어렵다. 낙폭 과대주가 즐비하고 과매도 국면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은 가격을 볼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돌이켜보면 2년 전 동학개미들이 올린 전과는 성장률 반등, 기업들의 디지털 대전환과의 동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학개미들의 집단지성을 이끄는 선도그룹의 실력은 주식시장의 여느 분석가나 펀드매니저 못지않다. 증권 방송과 각종 투자 플랫폼 덕분에 개인과 기관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도 눈에 띄게 사라졌다. 공부하고 탐구하는 분위기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제 긴축의 시대다. 작은 밑천으로 큰돈을 벌 수 있던 시절은 끝났다. 동학개미 1세대는 비록 패배의 쓴맛을 보고 있지만 값진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 주가 하락이 세상의 끝도 아니다. 투자 실패를 지나치게 자책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위기가 지나가면 세상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다. 모든 산업과 기업들이 신새벽에 떠나는 그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우리의 상상력을 완전히 전복하는 신기술이 어둠 속에서 몸을 풀고 있을 것이다. 주식은 영원하다. 주식회사 제도는 우리에게 풍요와 번영을 안겨다 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기다려 보라. 돈이 어딜 가겠나. 인재와 기술이 어디로 집결하겠나. 결국 주식으로 돌아온다. 더 성숙해지고 더 똑똑해질 동학개미들의 시즌2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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