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인사혁신처장(사진)은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백과사전 두께의 공무원 인사관계법령집을 들어 보이며 대화를 시작했다. 김 처장은 “정해진 법규에 따른 인사 운영은 체계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부처별 특수성을 반영하거나 국내외 환경에 대응하는 데 분명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 경력채용을 사례로 들며 “채용 관련 법규를 보면 근무경력, 학위, 자격증 등 구체적인 기준이 빼곡히 나열돼 있다”며 “지금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각 부처가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신산업 전문가를 채용하기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3일 취임사를 통해 “공직 인사혁신과 관련된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문제의식 때문이다. 김 처장은 “각 부처와 해당 장관이 자율성을 갖고 부처별 여건에 맞는 인사제도를 운영하면서 그 결과에 책임지는 인사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공무원 순환보직제와 관련해선 “잦은 순환보직으로 나타나는 정부의 전문성 저하는 공직 사회가 해결해야 할 오랜 숙제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순환보직제는 다양한 직무경험을 통해 정책적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발생하는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을 해결할 대안이 필요하다는 게 김 처장의 생각이다. 그는 “공직생활 기간에 한 분야에서만 근무하며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전문직공무원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처가 2017년 도입한 전문직공무원제는 국제통상(산업통상자원부), 남북회담(통일부), 환경보건(환경부) 등 11개 분야(10개 부처, 217명)에서 운영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인재 확보부터 퇴직까지 정부 전자인사관리시스템(e-사람)을 2024년부터 3년간 100% 디지털 전환하는 작업도 할 예정이다. 집합교육 중심의 공무원 교육에도 변화가 생긴다. 내년부터 AI 알고리즘이 적용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무원들이 맞춤형 학습을 받을 수 있는 ‘인재개발 플랫폼’도 도입된다.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퇴직공무원 재취업심사 제도에 대해선 “퇴직공무원 재취업심사제는 엄격한 국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최소한의 룰”이라며 “민간 기업으로 옮기려는 공무원들이 퇴직 전 이른바 경력 세탁을 하는 사례도 많아 이 부분에 대한 제도 보완에 더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처장은 행시 28회로 공직에 입문해 줄곧 인사 관련 업무를 맡아온 정부 내 대표적 인사통으로 뽑힌다. 안전행정부 시절 인사실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때 인사처 차장과 청와대 인사혁신비서관을 지냈다. 모교인 한양대에서 특훈교수로 조직 혁신 관련 강의를 했다. 그는 “공무원 조직 역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작은 사회인 만큼 관리자 직급의 대인관계 기술이 조직의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좌우하게 된다”며 “‘이렇게 하라’는 식의 일방적인 관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코칭을 통해 조직원들의 직무 자발성과 업무 몰입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이정호/장강호 기자/사진=허문찬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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