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기업처럼 최근 들어 M&A·설비투자를 접거나 알짜 자산을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고금리·고임금·고환율·원자재값 급등 등 ‘4중고(高)’로 경영 환경이 불투명해진 탓이다.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들 사이에서는 줄도산 공포까지 확산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잇달아 인상하면서 시장금리가 덩달아 뜀박질한 결과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이달 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올린 데 이어 다음달에도 추가로 0.75%포인트 인상할 전망이다. 한국은행도 다음달에 기준금리를 0.25~0.5%포인트 올릴 것이 유력하다.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 이자비용이 큰 폭으로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기업평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비금융기업 상장사 30곳의 올 1분기 이자비용은 7191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준금리 인상 폭에 따라 조만간 분기 이자비용이 1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평균 시장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각각 연간 450억원, 328억원의 이자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한계기업의 무더기 도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외부감사를 받는 기업 1만7827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비율)이 100% 미만인 한계기업 비중이 34.1%에 달했다. 전경련은 기업 조달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한계기업 비중이 34.1%에서 39.5%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 상당수는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다시 자금(차환)을 빌린다. 하지만 치솟는 금리에 한계기업의 차환 작업이 차질을 빚을 우려도 커졌다. 이달 1~17일 회사채 발행액은 4조363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5% 급감했다.
금리와 함께 환율도 뜀박질하고 있다. 올해 원·달러 평균 환율은 1229원58전으로 작년 평균(1144원79전)에 비해 84원79전(7.4%) 뛰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한국 기업의 대외채무는 작년 말보다 30억9150만달러(약 3조9800억원) 늘어난 1483억3400만달러(약 190조9800억원)에 달했다. 환율이 뛰면 원화로 환산한 외화부채 이자 부담이 커지고, 환손실도 불어난다. 환율 상승은 원자재 도입 비용을 밀어올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포스코를 비롯한 제철업체들도 석탄 가격 부담이 큰 폭으로 불어났다. 올 1분기 석탄 가격은 t당 488달러로 작년 평균 가격(224.25달러)보다 117.6%나 뛰었다. 대한항공도 올 1분기 항공유 가격이 갤런(1갤런=3.785L)당 2.38달러로 작년 평균 대비 33.6% 올랐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고객사의 반발 탓에 원자재 가격 상승폭만큼 제품 가격을 올리기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건비 부담도 상당했다. 올 1분기 LG에너지솔루션 삼성바이오로직스 LG화학 현대자동차 기아 등 시가총액 기준 상위 비금융 상장사 15곳의 인건비(급여총액 기준)는 6조7833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1분기(5조4615억원)와 비교해 24.2%(1조3218억원) 늘었다. 뛰는 물가에 대응해 실질 구매력 수준을 유지하려는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진 결과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올 하반기 Fed에 이어 한은도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것”이라며 “금리·환율 급등의 충격이 기업 경영에 본격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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