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 22일 15:1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반도체 전공정 장비업체 에이치피에스피(HPSP)가 7월 코스닥 상장을 위해 공모 절차에 착수했다. 글로벌에서 유일하게 보유한 고압 열처리 공정 장비를 내세워 최근 3년간 가파른 실적 성장세를 보인 기업이다.
지난해 반도체 후공정 기업인 한미반도체가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하면서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향후 전공정과 후공정을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전망이다.
최근 공모주 시장이 다소 위축됐지만, 반도체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경우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 점은 긍정적인 포인트로 꼽혔다. 수익성과 성장성이 공모주 시장의 핵심 키워드가 떠오른 상황에서 반도체 관련 산업이 이에 부합하는 업종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덕분이다.
글로벌 유일 고압 열처리 공정 장비
에이치피에스피는 오는 29일~30일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해 공모가를 확정한다. 7월 6일~7일 일반 청약을 거쳐 7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NH투자증권이 대표 주관업무를 맡았다.에이치피에스피는 반도체에 생긴 손상을 제거하기 위한 열처리 공정 장비를 제조·공급하는 회사다. 열처리 공정은 반도체 표면이나 접합부의 계면 결함을 전기적으로 비활성화해 안정성을 높이는 작업이다.
주요 제품은 열처리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GENI-SYS’ 장비다. 지난해 매출의 96.3%를 책임진 제품이다. GENI-SYS 제품은 섭씨 450도 이하 온도에서 100% 수소 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고압 열처리 공정 장비다.
기존 장비가 4% 미만의 수소 농도를 유지하거나 섭씨 600도 이상의 고열 장비였던 것과 달리 압력 수준을 1기압~25기압 범위로 확대해 고압에서 가스 농도를 높여 저온 공정을 가능케 하는 방식이다. 에이치피에스피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유한 기술이다.
2019년 이후부터 GENI-SYS 제품을 고객사에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외형 성장이 본격화됐다. 2019년 251억원 수준이었던 매출은 2020년 612억원, 2021년 918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 371억원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458.6% 늘었다.
수익성도 좋아지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49.3%로 2019년 25.8%, 2020년 40.5%와 비교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점차 반도체 공정이 점차 정밀해지면서 고도화된 고압 열처리 공정에 대한 수요는 커지고 있다. 이에 반도체 시장 확대와 맞물려 에이치피에스피의 장비에 대한 수요 역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반도체 공정이 28나노미터 이하 수준으로 고도화되면서 필연적으로 사용되는 고유전율(high-k) 절연막 사용률이 높아짐에 따라 GENI-SYS 제품을 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보다 대비 미세 선단 공정이 요구되는 비메모리 부문에서 수율 개선을 위한 수요가 먼저 확대되는 추세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시장조사기관인 Omdia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는 약 560조원으로 2022년에는 610조원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5.7%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2대 주주 한미반도체와 시너지 효과 기대
에이치피에스피의 모태 기업은 풍산의 자회사였던 PSMC(옛 풍산마이크로텍)의 캘리포니아 지사였다. 지난 2017년 3월 분사 이후 2017년 4월 풍산의 장비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현재의 기틀을 갖췄다.에이치피에스피의 최대주주는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가 운용하는 사모펀드 ‘프레스토제6호PEF’다. 지분 41.51%를 보유하고 있다.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는 2017년 에이치피에스피가 분사할 당시 지분을 인수한 뒤 줄곧 최대 주주 지위를 유지했다.
크레센토에쿼티파트너스는 투자금 회수를 위해 지난해 시장에서 원매자를 물색하기도 했지만 결국 매각이 아닌 기업공개로 방향을 바꿨다.
지난해 6월에는 반도체 후공정 기업인 한미반도체가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했다. 한미반도체는 지분 12.5%(5만1777주)를 375억원에 매입해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이와 함께 곽동신 한미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 사재 375억원을 들여 지분 12.5%를 확보하면서 약 25%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확보한 상태다.
한미반도체와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는 지난 2013년과 2016년 한미반도체 교환사채 발행 과정에서 공동투자자로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일반적으로 사모펀드가 최대 주주인 기업의 경우 기업공개 이후 경영권 매각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하지만 한미반도체를 전략적 투자자로 유치하면서 에이치피에스피의 향후 경영 안정에 대한 일종의 보호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한미반도체 역시 에이치피에스피 지분 투자를 통해 사업상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테스트와 패키징 장비 제조에 주력해온 후공정 장비업체다. 에이치피에스피를 통해 전공정 사업까지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장비회사로 도약을 꾀할 수 있다.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와 한미반도체 등 기존 주요 주주들은 이번 기업공개 과정에서 구주매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00% 신주발행으로 공모구조를 꾸려 에이치피에스피의 연구개발 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예상 시가총액 4500억~4900억원
에이치피에스피와 주관사인 NH투자증권은 유진테크와 에이피티씨, 넥스틴, 피에스케이 등 4곳을 비교기업으로 선정했다. 이들 기업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16.60배로 산출됐다.이에 에이치피에스피의 기업가치는 약 8346억원으로 책정됐다. 주당 평가가액은 3만9391원으로 여기에 할인율 36.53%~41.61%를 적용해 공모가 희망 범위를 2만3000~2만5000원으로 제시했다. 예상 시가총액은 4500억~4900억원이다.
올해 공모주 시장이 얼어붙었지만,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상장 행렬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화학소재 기업 영창케미칼이 오는 27일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밖에 지씨티세미컨덕터와 저스템, 제이아이테크 등 반도체 관련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상반기에 상장 예심을 청구해둔 상태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 6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는 반도체 레이저 전문기업 레이저쎌은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 1443대 1, 일반 청약 경쟁률 1845대 1을 확보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앞서 증시에 입성한 가온칩스와 7월 상장하는 넥스트칩 등도 기관 수요예측에서 1000대 1을 훌쩍 넘는 경쟁률을 확보해 공모가 상단을 뛰어넘는 공모가를 책정했다.
SK쉴더스와 원스토어, 태림페이퍼 등 중대형 IPO 기업이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해 상장 철회를 선택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공모주 시장의 옥석 가리기가 한창인 가운데 가시적 실적을 내는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는 평가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경우 정부는 물론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이 육성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미래 성장성 역시 유망한 업종으로 꼽힌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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