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3주째 ‘개점휴업’ 중인 가운데 여야가 “민생을 챙기겠다”며 앞다퉈 특별위원회와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민생 정책을 시행하려면 법을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정작 여야의 국회 원(院) 구성 협상은 한발짝도 진전되지 않고 있다. 입법부 공백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정치권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TF·특위 활동으로 ‘보여주기식’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날 하루에만 각종 회의를 네 차례 했다. 각 상임위원회 간사가 참석한 현안점검회의부터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1차 회의, 물가·민생안정특위 2차 회의, 정책의원총회가 연이어 국회에서 열렸다. 정책의총에선 박진 외교부 장관이 대북 정책과 동북아 외교 등을 주제로 특강했다. 지난 14일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반도체 특강도 있었다. 국민의힘에선 이달 반도체산업지원특위(가칭)도 출범한다.
여야는 이날 유류세 인하 폭을 늘리겠다고 각각 발표했는데, 이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을 고쳐야 가능하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법인세 인하를 위해서도 국회가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화물연대 총파업을 촉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일몰제 연장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 사안이다. 종부세 완화, 부동산 관련 대책 역시 국회 협력 없이는 시행이 불가능하다.
특위나 TF 활동 자체가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위에 참여한 한 초선의원은 “정책은 정부가 발표하고 의원은 입법에 신경 써야 하는데, 원 구성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위에서 활동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원 구성도 못한 ‘유령 국회’에 대한 자성과 함께 하루 기준 약 42만원에 달하는 국회의원 세비를 반납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의정 활동의 본질은 국회를 열어 상임위 활동을 통해 법안을 만들고, 정부를 상대로 정책 질의와 토론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정말 민생을 위하고 걱정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원 구성 협상을 끝내고, 국회 문을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야는 이날 원 구성 협상을 벌였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네 탓 공방’을 이어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마라톤회담을 공식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사실상 거부했다”며 “민주당이 더 갖겠다고 버틴다면 국회는 비정상적인 공존 상태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여당이 약자 코스프레, 발목잡기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며 표심만 챙기고 있다”며 “여당으로서 진정성 있는 해결 의지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알리바이만 갖추려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양길성/설지연/맹진규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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