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정당?정치·이론 체계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잘 이끌고 있는지 숙고할 시점입니다.”
21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내 ‘민주주의 클러스터’ 출범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 참석한 정치?사회?법학자들이 이 같이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이날 출범 기념식 및 학술회의를 열고 법?제도 개혁?불평등 완화 등 한국 민주주의 개선 방안을 토론했다. 국가미래전략원 민주주의 클러스터는 앞으로 △민주주의 침식의 세계적 추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 △민주주의의 실천 방안 등을 연구할 계획이다.
기조 강연을 맡은 유홍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은 경제적 양극화를 넘어 정치적 양극화로 나아가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의 생명력을 되살리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여러 조건들을 재정비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하락해 한 쪽 정치 이념을 극단적으로 표방하는 정당이 등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임경훈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유럽권 국가들은 전통 정당의 위상이 하락하고 이른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 약진하고 있다”며 “빈부 격차 등 불평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국민은 민주주의를 향한 믿음을 잃고 극단적인 이분법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치적 양극화의 해결책으로는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주형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참여?숙의?직접 민주주의를 연계하고 언론?시민단체 등과 함께 만들어가는 역동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시민의 정치 참여 통로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변화하는 정치 제도를 뒷받침할 교육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올해 1월부터 정당 가입 연령이 16세로 낮아졌고, 2년 전부터 선거 연령도 18세로 낮아졌지만 이들을 교육할 기반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사회가 새로운 유권자에게 정치적 시민권을 부여한 만큼 초?중?고 학생들의 정치 교육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 정치 세력을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정치 팬덤 현상 등은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세연 전 국회의원은 “일명 팬덤 정치에서 비롯되는 ‘댓글 테러’, ‘신상털이’ 등의 문제는 반드시 법적으로 단속해야 한다”며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왜곡할 수 있는 정치 표현은 규제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논했다.
한편 한국의 민주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 한국만의 이론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송석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의 형사 사법화 등 타국의 정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국만의 현상이 있다”며 “제왕적 대통령제도 원래는 미국이 일종의 제국이 돼 연방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이를 그대로 한국 대통령제에 적용해 해석하면 모순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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