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 칼럼] 국포·수포자 느는 학교, 어찌할까

입력 2022-06-22 17:34   수정 2022-06-23 00:24

학생들은 필수과목에다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다. 성적은 절대평가다. 90점 이상은 A, 80점 이상은 B, 70점 이상은 C 이런 식이다. 과목별로 일정 점수에 미달하면 다시 시험을 볼 수 있다. 다만 재시험을 보려면 추가 숙제를 해야 한다. 학생들은 숙제를 하면서 다시 공부한다. 재시험에서 100점을 받아도 최대 B학점까지만 올릴 수 있다. 처음부터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을 고려한 것이다.

미국식 교육과정을 따르는 한 국제학교 얘기다. 보통 시험이라고 하면 성적과 등수를 떠올리는데 여기선 시험 목적이 학생에 대한 변별보다 학업 성취도를 끌어올리는 데 있음이 명확하다. 이 사례를 떠올린 것은 최근 기초학력 저하 문제가 다시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1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평가 대상인 중 3과 고 2 학생들에서 중위권 이상으로 볼 수 있는 ‘우수’와 ‘보통’ 학력 비율이 코로나로 역대 최저였던 전년도 수준에 머물렀다. 학업 성취도 평가는 절대평가로 우수, 보통,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4단계로 나뉜다.

더 큰 문제는 다음 학년에 진학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정도를 뜻하는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고 2의 경우 국어 7.1%, 수학 14.2%, 영어 9.8%로 2년 연속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 비율은 2013년만 해도 각각 2.9%, 4.5%, 2.8%였다. 3배 안팎으로 늘었다. 중 3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학력 저하엔 코로나 영향이 크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시작됐다는 지적이 많다. ‘OECD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결과를 봐도 한국 학생들의 수학, 읽기, 과학 소양 평가에서 2015년부터 2수준 미만(1이 최저, 6이 최고) 하위 학생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학력 저하 문제의 심각성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신임 교육감들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원인에 대한 인식의 출발점과 처방이 다르다. 진보 계열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얼마 전 3기 출범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시기 학습 중간층 붕괴를 우려하며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켜 맞춤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반면 보수 교육감들은 그동안 학생들에 대한 평가와 진단을 제대로 안 한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2017년 지금의 3% 표집 방식으로 바뀐 학업 성취도 평가를 다시 전수조사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진보 계열에선 서열화를 부추기는 ‘일제고사’의 부활이라며 펄쩍 뛴다.

학력 수준이 떨어진 원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대인 관계 갈등 해소 등 비인지적 역량을 강조하는 교육과정 때문에 읽기 쓰기 셈하기와 같은 인지적 측면의 학습이 소홀해졌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험이 없는 자유학기제, 잦은 교육과정 개편, 형식적인 토론 수업의 한계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학업 성취도는 공교육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필수 과목인 국·영·수를 포기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방치해선 안 된다. 일단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학업 성취도 전수조사의 경우 과거 학교별 과열 경쟁 등 부작용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개 범위를 학생, 학부모, 교사로 한정하는 등 보완책을 찾아야지 무조건 서열화라며 거부할 일은 아니다.

학교에서 진단을 못 받아 불안한 학부모들은 전국 단위로 평가를 해준다는 사교육업체를 찾아간다. 또 다른 교육 격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물론 평가에 그쳐선 안 된다. 진단 결과 뒤처진 학생들에겐 ‘포기’하지 않도록 맞춤 지원을 해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교육 실험’을 해왔다. 웬만한 장점과 문제점들을 다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영에 따라 ‘도 아니면 모’식의 접근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인 방안을 찾기가 오히려 쉬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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