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공 어느 부분에 비정질 합금을 배치할지, 얼마큼 넣을지 500가지가 넘는 경우의 수를 따져봤습니다.”
김폴 코오롱미래기술원 무기소재 연구소장(왼쪽)과 박재규 아토메탈테크코리아 부장(오른쪽)은 비정질 합금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세계에서 가장 멀리 날아가는 골프공을 개발했다. 비정질 합금은 철, 크롬 등을 섞은 금속을 급속도로 냉각해 원자와 원자 사이 공간을 최대한 없앤 신소재다. 결정 구조가 불규칙하면서도 촘촘해 △고강도 △고탄성 △내마모성(마모에 내성이 강한 특성) △내부식성 등의 특성을 지닌다.
코오롱미래기술원은 2018년 비정질 합금 연구개발(R&D)에 나서 국내 최초로 양산에 성공했다. 김 소장은 “9명의 무기 소재 연구원이 4년 동안 비정질 합금 융용·분사·냉각 단계를 거쳐 가장 활용하기 좋은 분말 형태의 소재(아토메탈)를 개발했다”며 “분말 입자 굵기는 머리카락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토메탈의 고탄성 특징을 최대로 끌어낸 첫 제품이 골프공 아토맥스다. 아토메탈을 골프공 외핵에 넣을지, 내핵에 넣을지, 얼마큼의 양을 어떻게 분산해야 할지 500가지가 넘는 경우의 수를 2년 동안 하나씩 검증한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 최적의 조합을 찾아냈을 때 김 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쳤다. 박 부장은 “핵심은 골프공에 가해진 충격 에너지를 손실 없이 그대로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아토메탈 골프채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골프공 아토맥스는 로봇 스윙기 테스트 결과 다른 브랜드 10개사 13종 골프공 대비 13~18m(15~20야드) 이상 더 날아가는 기록(270~280야드)을 세웠다. 아토맥스에는 김 소장과 박 부장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개발했다는 설명이다.
골프공은 시작에 불과하다. 코오롱그룹은 아토메탈의 내마모·내부식성을 공장 설비 코팅에 활용할 예정이다. 2차전지용 동박이나 음극재 등 얇은 소재를 뽑아낼 때 쓰이는 노즐과 롤에 적용해 설비 수명을 늘릴 계획이다. 김 소장은 “고부가가치 제품일수록 정교한 코팅이 필요하다”며 “기존 코팅용으로 활용하던 텅스텐 소재 대신 아토메탈을 씌우면 부품 수명이 최대 2배 길어진다”고 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주력 제품이자 슈퍼섬유라고 불리는 아라미드 생산설비에는 이미 아토메탈 코팅이 적용돼 있다. 고강도의 아토메탈은 강한 진동을 견뎌야 하는 항공·우주 부품에도 쓰일 수 있다. 박 부장은 “비정질 합금의 우수한 특성을 활용해 특허도 출원했다”며 “산업용 3차원(3D) 프린팅, 몰딩 원료로도 활용해 공급처를 계속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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