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자개로 만든 ‘무지개’입니다. 김유선 작가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특수한 자개를 2m짜리 동심원으로 이어 붙였습니다. 햇빛에 따라 반짝이는 이 자개는 영상 작품인 ‘바다에서 태어난 무지개’와 함께 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영상에서는 푸른 제주 바다가 등장합니다. 가파도에서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론으로 촬영한 이 영상을 가만히 지켜보면, 물 위로 무지개빛 자개가 서서히 떠오릅니다. 자개는 바다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조개가 자신의 몸을 희생해 진주를 품듯 이 바다가 상처받은 아이들을 어머니처럼 품어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전 층을 조망하는 전망대로 가면 나무 재질에 커터칼로 글자를 새긴 작품이 보입니다. 조명에 따라 희미하게 새겨진 글씨는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라고 쓰여 있습니다. 박미화 작가의 이 작품은 세월호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깊이 새긴 작품입니다. 그는 비석과 사물에 이름을 새기며 생명력과 애도의 마음을 담습니다.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설치 작품도 있습니다. 총탄 대신 검은 비눗방울이 ‘톡’ 터지며 그림을 그리는 ‘버블 워’가 그것입니다. 한진수 작가는 탄약통 같은 것들을 활용해 감정 없이 거품을 쏘아대는 기계장치를 만들었습니다. 비눗방울과 기계 방아쇠를 통해 생명의 무게감을 나타냈죠. 그는 처음에는 붉은 잉크를 사용했지만, 몇 번의 테스트 끝에 검은 잉크를 쓰기로 했다고 합니다. 인권이 묵살되고 묵인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죠. 비눗방울이 그리는 그림은 공기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집니다. 과연 전시가 끝날 무렵에는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궁금합니다.
작은 미디어아트도 눈에 띕니다. 정정주 작가의 ‘로비’는 한국 건축 형태의 모형 안에 작은 모니터를 넣은 작품입니다. 영상 속에는 상처가 있는 이들이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화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공간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 나와 타인의 관계와 거리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무지개빛 거리를 그대로 옮긴 듯한 최수진 작가의 ‘레인보우 피플’이 나옵니다. 그는 1986년생으로 참여 작가 중 가장 젊습니다. 대한민국 중앙예술대전 대상 수상자인 그의 작품은 색깔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뭉글뭉글한 ‘숨’처럼 보이는 색깔은 인간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고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표현했습니다.
서소문성지 지하 3층의 순교자들 무덤을 지나 하늘광장에 다다르면, 모래사장에 누워 있는 아이와 마주하게 됩니다.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유럽으로 이주하던 도중 배가 난파해 터키 보드룸 해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쿠르디’ 입니다. 서용선 작가의 작품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먼 나라 얘기 같은 비극을 관람객의 눈앞에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고향 땅을 떠나 타국에서 죽은 이 아이를 받아줄 나라는 정녕 천국밖에 없었을까요. 전시를 보고 나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에 감사한 기분을 가지게 됩니다. 전시는 8월 28일까지. 입장료 무료.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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