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겨울이 오고 있다

입력 2022-06-23 17:10   수정 2022-06-24 00:10

‘팍스 아토미카(Pax Atomica, 핵 평화)’. 2차 세계대전 이후 핵 시대를 일컫는다.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2015년 저서 《사피엔스》에서 현대를 팍스 아토미카의 시대로 규정했다. 전쟁을 일삼던 인류가 ‘행복한 진전’을 이뤘다고 썼다.

팍스 아토미카란 용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런 행복한 진전의 일등공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핵무기다. 핵무기는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집단자살, 공멸로 바꿔놓았다. 누구도 쉽사리 전쟁에 나설 수 없게 했다.

하라리가 학자들의 연구를 분석해 꼽은 또 다른 원인도 흥미롭다. 전쟁의 비용이 치솟은 반면 이익은 크게 줄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 기간 적의 영토를 약탈하거나 병합하면 엄청난 부(富)를 획득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부가 들판과 가축, 노예, 금 등 물질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獨·日 재무장…평화의 시대 끝나
오늘날의 부는 그 특성이 다르다. 정복하기 어려운 기술, 인적자원이 부의 원천이다. 캘리포니아를 생각해보자. 중국이 캘리포니아를 침공해 샌프란시스코를 정복한다고 해도 얻을 것이 별로 없다. 부는 구글 엔지니어의 머리와 마음속에 있다. 이들은 중국의 탱크가 선셋대로에 진입하기 전 인도 뭄바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하라리의 이런 분석을 뒤집었다. 평화의 시대는 분명히 끝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켜본 국제사회는 시진핑의 대만 침공 가능성도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인 독일과 일본은 재무장하고 있다. 독일 연방하원은 이달 초 1000억유로(약 136조원)의 특별방위기금 조성안을 승인했다. 2024년까지 매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도 5년 안에 방위비를 GDP의 2%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외교 전문지 포리어페어스는 “두 나라의 죄책감이 2차 대전의 마지막 생존자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하라리가 제시한 평화의 시대에 대한 분석은 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 역사를 지배해온 통념을 전제로 한다. ‘경제가 정치에 우선한다’는 통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통념도 깼다고 윌리엄 갤스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는 분석했다.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가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올해 -1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외국 기업과 공학자 등 지식인들의 러시아 탈출은 경제 성장 기반을 허물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침공 전 이를 알고 있었을 터다. 하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러시안 제국’의 꿈이 경제보다 우선이었다. ‘신냉전시대’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쟁은 세계 경제도 뒤흔들고 있다. 75년 만에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은 100년 만의 팬데믹, 40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과 뒤엉켜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선진 38개국의 지난 4월 물가 상승률은 9.2%로 34년 만에 가장 높았다. 세계은행(WB)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했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인류는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지금 ‘불행한 후퇴’의 길로 접어든 것인가. 분명한 것은 겨울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드 픽 모건스탠리 공동대표는 “불(인플레이션)과 얼음(경기침체)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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