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법인세를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 제거 방안의 하나다. 세 부담을 경감해 기업 투자 의지를 유도해내는 한편 이전 정부 때 과도하게 억눌렸던 기업인 사기도 높여주겠다는 취지다.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주요 정책으로 소개된 방안은 최고 25%인 법인세율을 22%로 내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임 문재인 정부 초기(2018년) 25%로 올린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정부의 주된 논리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 글로벌 기업의 한국 투자 확대에 도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대기업과 소수의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논리다. 법인세가 투자 증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연구도 필요해졌다. 법인세 인하, 투자 확대를 위해 필요한가.
법인세를 인하하면 해외로 나간 기업을 불러들일 수도 있다. 일종의 ‘세금 귀환’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구호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미국은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확 내렸다. 그 결과 연간 수백조원 규모의 기업 자금이 미국으로 되돌아왔다는 조사 통계가 있다. 지금 한국 기업의 법인세 부담률은 국제 비교로 볼 때 과도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8~2021년 연평균 27.3%로, 최대 경쟁 기업인 대만 TSMC의 11%와 비교하면 2.5배나 된다. 이런 ‘모래주머니’를 찬 채 어떻게 국제 경쟁에 나서나. 더구나 삼성전자는 경쟁 상대가 해외에 있는 글로벌 대기업 아닌가.
대기업에 대한 증세는 세금의 주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인 소득배분 효과에 기여하지도 않았다. 통계를 보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소득 1·2 위의 저소득 계층 근로소득은 이전보다 5~6%가량 줄어들었다. 부자 증세의 명분이나 취지가 맞지 않았다는 얘기다. 법인세는 세율뿐 아니라 과세 방식에서도 고칠 게 많다. 복잡한 과세 구간부터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이 해외 자회사에서 받는 배당금에 대한 과세도 국제 관행과 어긋난다. 법인세는 국제 비교가 자주 되고, 기업 투자의 주요한 변수가 된다는 점도 여러 조사로 확인된다. 그만큼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규준)에 부합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입장에서는 감세가 투자로 이어진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려면 실질적 분석 자료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설령 조세 감면이 투자를 유인한다고 해도 그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이 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투자 지역이나 투자 방식을 정할 때도 세금만 본다고 하기는 어렵다. 인건비, 기술 수준, 인프라 여건, 법률의 일반적 규제 정도, 행정 서비스의 적극성 등 수많은 요인을 감안하면서 투자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눈앞이 꽉 막힌 위기적 상황에서는 단지 세금만 깎아준다고 투자한다는 보장이 있나.
정부는 법인세 인하와 더불어 금융투자소득세 한시적 유예, 양도소득세 완화 및 폐지 등의 감세안을 함께 내왔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감세 정책은 명백히 대기업과 부자를 위한 것이다. 법인세 납부 실태를 보면 3000억원 이상(과표 기준)에 포함되는 기업은 84개 정도에 그친다. 이들 기업은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라 기존의 법인세 정도를 부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더 감면해줘야 하나. 더구나 정부 지출은 계속 늘어난다. 이런 기업의 세금까지 깎아주면 재정은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정부의 소득세 경감책 역시 부자를 위한 정책이다. 이전에 법인세를 올린 이유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기업이 사내 유보금을 과도하게 축적하면서 투자, 신규 고용, 임금 인상에는 인색했기 때문에 정부가 세 부담 강화로 대응한 것이다.
감세도 당연히 그중 하나다. 기업 정책에서 세계적 흐름을 주시하면서 한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경주하는 게 중요하다.
조세를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혼내기 위한 ‘징벌 과세’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다는 점, 조세 운용이 중산층 서민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면서 경제 살리기에도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여야 국회가 끝장 토론을 해야 할 게 이런 것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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