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싸이월드 일기, 유가족이 본다?…'개인정보 vs 추억 관리' [선한결의 IT포커스]

입력 2022-06-24 11:15   수정 2022-06-24 15:55




회원수가 3200만명에 달했던 싸이월드가 최근 서비스 재개에 맞춰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24일 밝혔습니다. 고인이 된 이용자가 싸이월드에 남긴 게시글 등 데이터에 대해 고인의 유가족이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싸이월드는 이를 위해 지난 한 달간 대형 로펌의 자문을 받아 싸이월드 이용약관을 수정했습니다. '회원의 사망 시 회원이 서비스 내에 게시한 게시글의 저작권은 별도의 절차 없이 그 상속인에게 상속됩니다'라는 조항(싸이월드 이용약관 제13조 1항)이 개정됐습니다.

싸이월드는 수정된 약관에 대해 지난주부터 싸이월드 전 회원에게 이메일을 돌려 알리고 있습니다.
"세상 떠난 가족의 미니홈피도 데이터 접근 가능"
싸이월드가 이용약관을 바꾸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2019년 서비스를 중단했던 싸이월드는 지난 4월 다시 열렸습니다. 이중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의 '미니홈'도 포함돼 있습니다. 각자 일기(다이어리)를 쓰거나 사진을 올리고, 다른 이가 글(방명록)을 남길 수 있게 한 사이버 공간입니다.


일각에선 고인의 싸이월드 미니홈 등을 관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일었다고 합니다. 한때 싸이월드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유명 배우 A씨의 유족들이 대표적입니다. 싸이월드제트측에 고인의 추억이 대거 남아있는 싸이월드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다이어리에 대한 접근 권한을 달라고 공식 요청을 했습니다.

싸이월드제트는 A씨의 유족에게 데이터 접근을 허용하고, 다른 이들 유족들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싸이월드제트 관계자는 "3200만 회원의 사진첩에는 참 많은 추억과 기억이 담겨있다"며 "유명 배우의 유족 분들뿐 아니라 모든 유족 분들께 소중한 자산을 전달해 드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이의 프라이버시 vs 산 자의 추억 관리
사망한 이들의 디지털 데이터를 유가족들이 '상속'하게 하는 문제는 세계 각국에서 오랜 논쟁거리입니다. 일부는 고인이 쓴 책이나 일기장, 편지 등 유품을 유가족이 물려받는 것과 디지털콘텐츠가 상속되는 것이 다를 바 없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개인정보보호 등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사망자의 계정이나 데이터 전부에 대해 유가족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선 안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디지털콘텐츠의 특성에 따라 접근 권한을 달리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개인이 온라인 게임이나 플랫폼에서 획득한 아이템과 포인트 등 '재산성 디지털데이터'는 게시물, 사진, 영상, 댓글 등과 구분하자는 얘기입니다.

싸이월드도 이전엔 유가족들이 고인의 미니홈피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미니홈피는 고인이 최종 설정한 상태로 유지하고, 비공개 데이터는 유족이 요청하더라도 열람할 수 없다는 방칙이었습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숨진 장병들에 대해 유족들이 단체로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이메일 접근 권한을 달라고 했던 때에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유가족이 미니홈피 해지를 요청할 경우엔 이를 받아들였는데요. 싸이월드가 '대세' 서비스 중 하나였던 2010년대 초반 당시 서비스 운영사였던 SK커뮤니케이션즈 고객센터엔 고인의 계정 탈퇴 요청이 연간 200건 이상 접수됐다고 합니다.

독일에선 고인의 개인정보 보호와 유가족의 상속권 중 무엇을 우선으로 둘 지를 두고 대법원까지 간 사례가 있습니다. 2012년 지하철에 치여 숨진 한 15세 청소년의 부모가 딸의 페이스북 계정 데이터와 메시지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페이스북에 요청했으나 거절 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당시 이 부부는 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딸이 자살한 것인지, 아니면 사고사로 숨진 것인지 단서를 찾고자 했다고 합니다.


독일 법원도 이 문제를 두고 갈팡질팡했습니다. 2015년 1심 재판부는 독일 상속법을 위주로 부모가 숨진 딸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2017년 2심 재판부는 독일의 헌법 격인 기본법에 따라 개인의 프라이버시 권리를 우선해야한다며 1심을 뒤집었습니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이후 사망자가 생전 페이스북과 맺은 이용 계약이 유산의 일부분이므로 부모가 숨진 딸의 계정에 완전히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디지털 유산 관리자' 지정하는 시대 열릴까
아직 국내엔 고인의 디지털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확실히 규정한 법령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도 대부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통신(IT) 서비스 기업들이 제각각 다른 정책을 내놓고 있는 이유입니다.

네이버는 자체 '디지털 유산 정책'을 두고 있습니다. 유족들이 고인의 데이터 요청을 할 경우 블로그 글 등 공개된 정보에 한해 데이터 백업을 지원합니다. 공개된 글은 유족이 요청해 삭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공개 데이터에 대해선 유족에게도 접근 권한을 주지 않습니다.

카카오는 이용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우선시합니다. 고인의 아이디에 대한 개인정보나 데이터를 유족들에게 제공하지 않고, 가족이 사망자의 아이디를 알고 있는 경우에 한해 사망자 계정을 삭제 처리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새로 상속 서비스를 시작한 싸이월드도 고인이 생전에 올린 비공개 사진·다이어리(일기) 내용 등은 유족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싸이월드 관계자는 “고인의 ‘잊혀질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유족분들에게도 비공개 데이터는 전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외국 기업들은 이용자에게 디지털 데이터를 상속·관리할 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엔 애플이 자체 아이폰 운영체제 iOS에 디지털 유산 메뉴를 추가했습니다. 아이폰 사용자가 자신이 사망할 경우 아이폰·아이클라우드 등에 저정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유산관리자'를 최대 다섯 명까지 직접 지정할 수 있는 메뉴입니다.

애플은 이전까지는 고인의 직계가족에게도 아이폰 개인 계정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고, 유가족이 각종 법률 문서를 제출할 경우 심사를 거쳐 계정 삭제만 해줬습니다.

구글도 사용자가 가족이나 친구 등을 디지털 데이터 상속자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메일, 유튜브, 구글 드라이브 등에 대해 계정을 이용하지 않은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전에 사용자가 지정해둔 사람이 해당 계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비활성 계정 관리’ 프로그램입니다. 계정 비활성 기간 기준은 3·6·12개월 단위로 이용자가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용자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입원하거나 사망해 해당 계정을 이용할 수 없게 된 경우를 대비한 서비스입니다.

앞으로는 어떨까요. 싸이월드제트는 대형 로펌과 함께 디지털유산 상속권에 대한 법제화를 입법기관에 요청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디지털 유산 상속과 고인의 '잊힐 권리’ 사이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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