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지난 50년간 고객들과 나눴던 정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집집마다 찾아가 매일 야쿠르트를 전달해주는 이들은 단순한 배달원이 아니었다. 코로나19로 방문 판매 조직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소비자들은 익숙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방문할 바에야 얼굴을 아는 사람이 더 안전할 것이란 판단이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된 ‘신개념 라스트마일 서비스’인 것이다.
hy 유통망의 최전선에서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는 약 1만1000여명의 프레시 매니저들.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에서 프레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이소율씨(31)를 만났다.
24일 한국경제신문은 금호동에서 프레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이소율씨를 만났다. 경력 만 1년의 햇병아리이지만 이미 금호동의 ‘야쿠르트 언니’로 통한다. 딸 뻘의 젊은 프레시 매니저를 처음 본 고객들이 야쿠르트 아줌마 대신 야쿠르트 언니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 이 씨는 “매니저라는 칭호보다 더 친근해서 좋다”고 말했다.
1970년대, 작은 바구니를 들고 야쿠르트를 배달해줬던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호칭도 장비도 진화중이다. hy는 무거운 수레를 대신할 전동 카트 ‘코코’를 2014년 도입했고 2019년부터 야쿠르트 아줌마 대신 ‘프레시 매니저’라고 불러달라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유니폼도 베이지색에 신선함을 상징하는 하늘색을 추가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프레시 매니저들이 수 년 내 아이언맨처럼 수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로봇을 조종하는 수준으로 진화할 것이란 우스갯소리까지 퍼졌다.
프레시 매니저의 연령대도 다양해지고있다. 주로 ‘기혼의 40대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2030세대의 유입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2030 프레시매니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혼 여성들의 직업이라는 인식과 수레를 끌며 몸을 써야한다는 것이 부담이었다. 2017년에 hy에 합류한 신규 2030대 매니저는 22명에 불과했지만 올해에는 반 년만에 179명의 2030대가 hy의 프레시매니저로 등록했다. 현재 1만1000여명의 hy 프레시매니저 중 5.1%가 2030세대다.
미라클 모닝이란 이른 시간에 일어나 운동, 공부 등 자기계발을 하면서 아침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해당 챌린지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을 끌고 있다.
금호 벽산아파트와 인근 상가를 합쳐 약 2500가구가 그녀의 배달 구역. 하루에 20㎞를 움직인다. 약 100가구의 정기 배송 고객에게 제품을 전달하면 금세 11시가 된다. 이동 중 짬이 나면 일반 고객에게도 제품을 판매한다.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은 역시 유산균 음료 ‘윌’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건강기능 식품 수요도 부쩍 늘었다.
그는 “위 건강 때문에 일반식 대신 유산균 음료로 식사를 대신하는 고객들이 더러 있다”며 “매일 끼니를 전달해줘 고맙다며 아침밥을 직접 차려주거나 고구마 같은 간식을 챙겨주는 ‘후한 인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소율씨처럼 프레시 매니저는 고객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쌓는 것이 특징이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며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자발적으로 출근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씨도 지난 1년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근무했다. 이 씨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제품의 효능에 대해서 공부하고 고객들에게 맞는 제품을 추천하기도 한다”며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고객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손에서 손으로 물건을 전해준다‘는 프레시 매니저의 철학에 맞게 야쿠르트, 건강기능식품에 이어 최근에는 면도기까지 전달하기 시작했다. 하반기에는 카드까지 고객에게 배송할 계획이다.
그는 배달카트 ‘코코’와 가장많은 시간을 보낸다. 코코는 운송수단이자 동료다. 폭우가 쏟아지면 코코 주위를 넓은 천막으로 가려 비를 차단하고 날이 추우면 코코 손잡이의 열선을 작동시킨다. 유독 언덕이 많은 금호동이지만 코코를 타면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다. hy는 코코를 도입하기 직전, 기동성을 실험하기 위해 금호동을 찾았다고 한다.
이소율 씨도 정오에 활동을 끝낸 뒤 뒤 옷을 갈아입고 영어학원으로 출근한다. 오후 5시까지 영어학원에서 상담교사로 일한다. 이 씨의 꿈은 자신만의 어학 화상교육 서비스 브랜드를 내는 것. 그는 “젊은 나이에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양분이 되고 있다”며 “영업 노하우를 쌓아 나만의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한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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