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상장사의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소수주주들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기업 실적이 개선되자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벌어들인 돈을 주주환원에 쓰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라는 압력이 거세졌다는 분석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대기업 사장을 몰아내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24일 미쓰비시UFJ신탁은행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6일까지 주주제안을 받은 상장사는 77곳, 안건수는 292건으로 모두 사상 최다치를 나타냈다. 지난해 주주제안을 받은 상장사는 17곳, 안건수는 47건이었다. 지금까지 주주제안이 가장 많았던 2017년의 212건을 크게 웃돌았다.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을 받은 기업이 지난해 17곳에서 올해 36곳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도 75건으로 급증했다. 상호 보유 주식를 매각하라는 주주제안이 184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익잉여금으로 배당을 늘리라는 안건이 28건, 자사주 취득 요구가 23건으로 뒤를 이었다.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 사상 최대 규모의 순익을 낸 상장사가 크게 늘어나면서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요시카와 히데노리 다이와종합연구소 선임 컨설턴트는 아사히신문에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꺾이면서 그동안 주주제안에 소극적이었던 행동주의 펀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모자회사 동시 상장과 상호 지분 보유 등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진 것도 주주제안이 늘어난 이유로 분석된다.
일본 상장사들은 경영권 안정을 명분으로 우호적인 관계의 기업이나 주거래 은행과 주식을 상호 보유하는 사례가 많다. 2013년부터 기업 지배구조 개혁에 나선 일본 정부와 도쿄증권거래소는 상장사 스스로 상호보유 지분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공시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상호 보유 주식이 감소하면 주주총회에서 맹목적으로 회사측 입장에 찬성하는 거수기 지분도 줄어든다.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 주주권 행사 지침) 도입 이후 기관투자가들이 명확한 근거 없이 회사 측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워진 점도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이 늘어난 배경으로 분석된다.
요시카와 선임은 "일본 기업은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평가 돼 있고, 지배구조를 개선할 여지가 많아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홍콩계 행동주의 펀드인 오아시스매니지먼트가 "우치야마 사장 일가가 개인 회사들을 통해 후지텍과 의심스런 거래를 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고 사장 연임안에 반대표를 던지도록 요청한게 계기였다. ISS 등 국제 의결권 자문사들까지 잇따라 반대 의견을 제시하자 회사측이 안건을 철회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한 주주제안도 늘었다. 행동주의 자산운용사인 애셋밸류인베스터즈(AVI)는 건축도장재 회사인 SK카엔에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를 요구했다. 유럽계 대형 자산운용사와 펀드는 일본 최대 석탄화력발전소 운영사인 J파워에 탈석탄 전략을 강화하라는 주주제안을 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주주제안이 가결되는 비율은 낮지만 경영진에 압력을 가하는 효과가 있다"며 "기업이 알아서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 매입을 실시하는 사례가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관련뉴스